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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게 검열은 어떻게 일상이 되는가?>

주최 : 서울프린지페스티벌 마이크로 포럼

​일시 : 20년 8월 18일

취지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마이크로포럼은 '세 명 이상만 모이면 포럼이 된다'는 개념으로 만들어졌어요. 페스티벌 참여 예술가들이 직접 주제를 제안하고 각자의 화두, 고민, 일상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입니다.

예술대학생 네트워크 블랙위원회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검열에 대해 매주 스터디를 진행했어요. 이를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마이크로 포럼을 찾았습니다. 포럼에서는 '예술가 동료들은 어떤 지점들에서 검열의 일상화를 느꼈는지', '그 반대방향으로 달려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했어요.

Q1. 일상에서 느낀 ‘검열’은 무엇이 있나요?

기택
저는 현대무용을 해요. 부상이 있었고, 다시 돌아왔음에도 재활이 100% 안 되었다는 생각에 스스로 검열하게 더라고요. 아직 난 못해, 이렇게. 그래서 무용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제약이 없다고 생각했던 현대무용에서 스스로 제약을 만들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서요.

 

재상
저는 검열 자체가 나한테 어떻게 작동하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게 내 행동을 제약하느냐, 내 생각을 제약하느냐, 하는 것들이요. 생각해봤을 때 그런 경험은 없었던 것 같아요. 검열과 자기 점검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경험들은 자기 점검의 정도였던 것 같아요.

 

엠케이
저는 건축 전공했어요. 모든 건축은 다 주가 있고 클라이언트가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학교에서는 작업들을 교수님 취향과 의도에 맞추는 것 또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실 고등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고, 예술가 이전에 학생으로서, 시민으로서도 저에게 스며들어 있는 태도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지금껏 어떻게 기능했는지는 무의식적이라 잘 모르겠지만요.

 

진호
저도 동감해요. 저는 한 교수님 밑에서 5년, 새로운 교수님 밑에서 3년을 일했어요. 막 입학했을 때는 교수님 말이 다 맞는 줄 알았어요. 요즘에는 그게 아니라는 걸 많이 느껴요. 그런 뒤에는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대학원 휴학까지 했어요. 그게 너무 주입이 되어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이도 저도 아니게 다 흐트러져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엔 교수님들 똥 닦아주다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린 것 같아요.

 

Q2. 학교 내/외에서 느꼈던 검열에 나는 어떻게 응했나? 

엠케이
저는 학교에서 부당함이나 검열을 느꼈을 때, 아주 적극적으로 가담했어요. 영악했다고 할까요..(웃음) 그게 잘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사람 뭘 좋아하고, 이런 사람이니까, 이런 것들에 대해 준비를 하는 거에요. 아주 잘 순응했던 것 같아요.

 

라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있었고, 그 당시 그것을 주도했던 송수근이라는 인물이 계원예대 총장 자리에 앉았어요. 그래서 학교에 비대위가 생기고 학생들이 시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총장의 위치는 여전해요.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 당사자성을 못 느끼는 상태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에 대해 같이 공감하고 이야기해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짱소
송수근씨가 총장이 된 뒤에 제가 직접적으로 받는 검열에 대해 강하게 느끼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검열은 분명 있었어요. 학교에서는 이에 문제의식을 가진 학생들이 아카이빙 전시, 퍼포먼스를 했어요. 특히 학생들이 많이 참여한 과가 있었는데, 그 과를 통폐합시키겠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 전시에 직접 송수근씨가 찾아와서 화를 냈다고 들었어요. 총장 퇴진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교수들에게 불이익에 대해 직접적으로 강압을 가하기도 했고요.

 

라임
저는 이번에 학교에서 검열을 느꼈어요. 등록금 반환 소송을 했는데, 학교에서 소송 취하하라고 학생들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한 거예요. 교수님이 전화 와서 ‘너 이런 식으로 하면 불이익이 있을 것이다’ 라고 전화를 했어요. 그 뒤에 총학생회에서 전화가 왔고요. ‘우리가 특별장학금도 주는데 왜 소송하려고 하냐, 소송 취하 안 하면 소송 안 한 학생들만 장학금을 줄 것이다.’ 이런 식이었어요. 학생이 수발을 드는 사람들이 아닌데도 그렇게 학생들을 검열했다는 것에 화가 났죠.

 


저는 총학생회 경험이 있어요. 학생처가 정보 경찰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학생회가 하는 행동들을 감시하고 총장에게 보고를 하거든요. 저는 학과가 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학과 비판하는 대자보 썼었어요. 그 뒤에 학과장님이 저를 불러서, ‘이렇게 하면 대외적으로 학교 이미지만 손해인데, 대자보를 쓰기 전에 말은 하고 써야지’ 라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게 바로 검열이 아닌가 싶어요. 학교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주제로 거리미술제를 할 때, 쫓겨나는 퍼포먼스를 했다고 학교에서 연락 온 적도 있었어요. ‘마포구청장 돈을 받는 축제인데, 어떻게 마포구청을 까는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Q3.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학생(혹은 청년/시민)자치 활동이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관행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해결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엠케이
저는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학교에 있을 때 영상과와 영화과가 통폐합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둘이 성향이 다른데, 이유는 물론 “취업률”이 낮아서 였고요. 이게 학교 일이 될 때, 그것이 얼마나 남의 일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교내 운동이 되었을 때는 힘을 얻기 쉽지 않더라고요. 예술대학생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 문제들에 대해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동감해요. 저 학교에 문제가 있네, 정도로 끝나버리는 것 같아요. 문제들이 결국에는 이 사회 구조 자체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데, 그냥 학교 그 안의 문제로만 치부되는 것 같아요. 당사자성이 없는 것이 가장 문제인 것 같아요. 내가 겪을 일들 아닌데, 나 예술 안 할 건데, 이런 식으로 회피해버리잖아요.

 

은주
프린지는 13년도 14년도에 박근혜씨가 인터뷰를 제안했고 거절을 했어요. 연출된 인터뷰를 하기 싫었거든요. 15년, 16년에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정말로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잖아요. 프린지도 그 목록에 있었던 거죠. 돈이 깎였죠. 한순간에 다 사라진 거예요. 시간이 지나고 그때에 있던 스텝들이 다 새로운 스텝으로 교체가 됐어요. 그런데 교체된 그 스텝들에게는 당사자성이 덜해요. 무감각한 느낌이 있죠. 상황을 직접 겪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당사자성이 다른 것이 느껴져요.

 

재상
당사자여야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블랙리스트 사태도, 그 당시에는 나는 당사자 아니야 라고 생각했지만 그 후에 당사자성을 갖게 된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 중간에 이어주는 다른 감각들을, 지금 우리가 하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게 우리의 일이라고 봐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그것도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엠케이
그것이 지속되고 있다는 감각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정권이 바뀌었고, 그 시기의 일들이 남의 일이 되는 것 같은데, 이것들이 세세화되고 보이지 않는 형태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를 감각하는 것. 그리고 어떤 형태로 기능하고 있는가 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라임
관심이 없는 게 문제일까, 모르는 게 먼저일까 하는 고민이 생겨요. 아예 이 문제에 접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도 들으면 분명 공감할 문제인데.. 이걸 다 한 명 한 명 가르쳐줄 수도 없고, 어떻게 공감을 불러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구조 자체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정말 몰라서 그런 거라면 알려주면 충분히 해결되는데, 정말로 그 지점들이 문제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들 깊게 연결되고 싶어 하지 않는데, 사실 운동이란 건 해결될 때까지 계속 이어지는 게 중요한 것 같거든요. 관련한 문제들, 비슷한 논제가 변화없이 계속되고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문제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은주
프린지가 얼마 전에 폭죽, 연막탄과 같은 시위적 퍼포먼스를 했어요. 그때 담당 주무관이 놀라서 달려오셨어요. 이런 거 여기서 하시면 안 된다고. 축제를 하지 못하게 될까 봐 되게 두렵고 속상했어요. 공기관이 제시하는 예술의 기능과 프린지의 기능이 서로 다르잖아요. 하지 않아야 하는 행동을 관에서 제시하기 때문에, 제한되는 정도의 자유 안에서 프린지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나랏일을 하는 공무원이고, 그 사람은 권한이 있고. 그러한 맥락 안에서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갑을의 관계가 성립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그 결정을 바꾸기 위해, 그 비대칭의 관계 속에서 되게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거죠.

 

엠케이
그 권력의 비대칭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청년 예술 지원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이 있어요. 그게 결국 나를 좀 길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원사업 쓸 때, 이것이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할 수 있는지 쓰는 게 속상했어요. 나는 이 작업이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걸 비즈니스 모델로 물어보는 게 속상했어요. 지원사업 몇 년 하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썰을 풀 수 있게 되거든요.(웃음) 그 경험들이 점점 ‘돈이 중요해’를 주입시키고, 그런 태도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게 아니냐 하는 생각이 있어요.

 


많은 지원 사업들이 서류에서 기대효과를 쓰게 하는데, 그 기대효과를 쓰는 것이 정말 좋은가 하는 생각이 있어요. 지원서를 쓸 때와 학교에서 배우는 ‘예술은 위대한 거야’라는 것 사이의 괴리도 있는 거 같아요. 한쪽은 되게 도구적이고, 한쪽은 사회적 효과나 그 맥락의 중요성을 고민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그 사이에서 포지셔닝을 예술가 스스로 해야 하는 거 같아요.

 

라임
예술대학이 등록금을 다른 계열보다 더 많이 내는데, 왜 나는 18학점 이상을 듣지 못하나, 나는 왜 듣고 싶은 수업을 못 듣나 하는 불만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 불만을 말하면 주변에서는 ‘학교가 다 그래. 그게 당연한 거야.’라는 반응들이 있거든요. 너무 많이 길들여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나에게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 또한  검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수련회’라는 것만 봐도 그렇잖아요. 개별성을 잘라내는 사례 중 하나인 것 같거든요. 스스로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모든 행동, 그런 것도 결국 검열이지 않느냐 하는 질문이 생기네요. 

 

진호
고등학교를 안 갔을 때 사회의 낙오자 라는 시선들이 많았어요. 음악 하고, 글 쓰고, 여행 다니고 3년 동안 자유롭게 행복하게 지냈는데, 주변의 낙오자라는 시선은 여전했어요. 그 사회적인 시선으로 인해서, 누군가 딱 집어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체화되는 게 있는 거 같아요.

해미
저는 왼손잡이인데 모든 기구들이 오른손 잡이에 맞추어져 있어요. 선생님들이 그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해주셨어요. 물론 지금까지도 저는 왼손으로 잘 살고 있고요. 제도나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알지만, 과연 ‘지금’을 반영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커리큘럼이 구성되는 과정에서 개개인의 이야기가 잘 수용되지 않고, 이미 만들어진 틀 내에 학생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효율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비효율에 대해 고민해 봄으로써 발전적인 사회로 거듭나는 게 필요하다 생각해요.

 

임기택
권력이라는 논지를 재정의하고 다르게 바라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학부 때 교수님 명의를 둔 외부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교수에게는 공연비가 쥐어지지만 학생들에게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우천시에도 공연을 해야 한다는 교수님 말대로 진행을 했는데, 관객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러다 부상 사고가 났는데, 교수님이 그 공연 관계자 앞에서 쩔쩔 매는 거죠. 어떻게 사고가 날 수 있느냐, 다시는 이곳과 함께 공연하지 않겠다고 말하니까. 학생들에게 갑인 교수님이 또다시 을이 되는 상황인 거죠. 교수라는 권력 위에는 돈이라는 가치관이 작동하기 때문에, 그것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교내에는 위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기득권을 가진 그들을 꼼짝할 수 없는 권력을 가지고 옴으로써 결국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그런 외부 권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국내는 미국 또는 유럽과는 달리 사회적인 무브먼트가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운동이나 변화, 혁신의 형태가 아닌 사회적 기업과 같은 재원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문제나 의식들이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결국 사회적 기업이란 대안으로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임기택
사회적인 무브먼트나 문제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사회적 문제, 이슈, 의식들을 계속 이야기해야 하지만 실제로 대중들에겐 경제적으로 다가오는 현실적인 문제가 더욱 크게 작동하는 것 같아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뿐더러, 이를 해결해 가는 과정 속에서 주체성을 상실하거나 그 속에 매몰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경제성이 충족되더라도 이를 유지하기 위해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의식을 가질 수 없는 사회구조 자체가 문제일 수 있겠다 싶어요.

 

라임
우리들이 자치를 이룰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돈이 문제인지, 사회적 제도나 인식이 문제인지 등에 대해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검열이나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시민으로서 사회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작용할 필요가 있는지, 예술가는 어떻게 자립하여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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