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평등한 사회를 꿈꾸면 안되나요?
공공성 관련 이슈페이퍼
신민준
예술대학생네트워크 활동가
2020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운영단
2020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문화예술분과 운영진
202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원회

좌 : 2017년 전국 예술대학생 10,162명이 참여한 등록금 관련 불만 설문
우 : 2020년 H대학교 커뮤니티에 올라온 등록금 관련 불만 게시글
예술대학의 등록금, 2017년과 2020년 데자뷰를 보는 씁쓸함
최근, 스무 살이 되어 올해 대학에 입학한 동생이 코로나 19로 인해 기대했던 대학 생활을 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등록금 외에도 입학하며 낸 학생회비도 아깝다고 말하며 에브리타임에 관련된 불만 글이 자주 올라오지만, 학생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오랜 기간 학생회를 했던 나는 우리학교 상황은 어떤가? 문득 궁금해져서 졸업 후 지웠던 학교 커뮤니티 앱을 내려받았다.
들어가자마자 인기게시글에 ‘차등등록금 100만 원 반환 건의문’이 올라와 있었고 400여 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상태였다. 조금 알아보니 반환을 주장하는 300여 명 정도의 학생들이 오픈 카톡방도 만든듯했다. 이들 역시 동생의 이야기처럼 학생들을 대표하는 학생회가 미온적이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 글을 보며 나는 씁쓸함을 느꼈다. 사실 예술대학을 비롯한 계열별 차등등록금이 근거가 없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문제로 제기되었고 3년 전에는 전국의 10,162명의 학생이 부당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고 잊혀졌다가 코로나 19로 부당성이 체감할 수 있는 현실로 증명되고 나서야 다시금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진척 상황이 없어 회의감이 조금 들었다.
이 학교는 예술대학생네트워크의 전신인 예술대학생등록금대책위원회 출범부터 함께한 4개 학교 중 1곳이었다. 예술대학의 근거 없는 차등등록금의 문제 해결을 주요 목적으로 삼은 이 단체에서 나는 발기인 중 한 명이었고 미술대학 학생회를 거쳐 총학생회를 하며 다른 친구들과 함께 교육 공공성에 근거하여 예술대학의 등록금과 실습환경을 비판하며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때 마다 학교의 답변은 미온적이었고,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임기가 끝날 때쯤에는 학교의 추후에 '적극' 검토하겠다는 이야기를 믿기 어려웠지만, 하는 수 없이 받아들이고 후임 학생회들에게 이 내용을 지속해서 신경 써줄 것을 부탁하며 나의 역할을 마무리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임기가 끝난 지도 두 해 정도가 지난 지금, 여전히 같은 내용이 학생들로부터 문제 제기되고 있는 것을 보며, 퍽 씁쓸함과 회의감을 느낀다. 사실 17년부터 20년까지 예술대학생네트워크는 단 한 번도 예술대학의 차등등록금 문제를 주요 의제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다. 이 기간 동안 정보공개청구와 국정감사를 활용하여 예술대학생의 차등 등록금이 불합리하다는 사실 근거들은 훨씬 더 축적되었다. 그럼에도 의제에 대한 열기는 점점 식어 간다고 체감하고 있다. 코로나 19가 아니었으면 이 문제는 다시금 공론화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17년 최초로 문제를 제기할 때, 예술대학 대표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한다. 그들은 떠났고 나는 남아있다. 우리가 함께 외쳤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앞에서 열린 예술대학생들의 집회
예술가의 삶을 선택하니 도망칠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회의감에 빠지고 싶지는 않다. 나는 2017년 처음으로 예술대학의 차등등록금에 대한 문제를 알게 되었을 때의 분노의 감정을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으로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카드뉴스를 만들었을 때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을 기억하며, 그 반응으로 이 일이 즐거워 잠도 자지 않고 계속 일하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리고 1만 명의 응집된 목소리는 「등록금 산정근거 공개법」이라는 구체적인 결과로 나타났던 것도 기억한다. 이후에도 등록금이 아니더라도 교육의 공공성과 문화예술의 공공성을 위한 우리의 활동들은 '국가우수장학금 예술계열 차별 조항 삭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위원 선임' 등 조금씩 성과를 내어왔다.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돌아보며, 왜 지금 활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고민해보면 “예술가로 살기로 선택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왜, 어느 순간부터 인지 모르게, 예술을 하며 살겠다는 신념이 있었다.(지금은 강박이 아닌가 고민해보지만,) 그러한 생각이 생긴 이후에는 예술대학을 비롯한 예술계의 많은 불합리가 ‘나의 일’처럼 느껴졌다. 지금 문제를 유예할지라도 어느 순간 더 큰 문제를 대면할 일이 생길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 그때도 도망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예술가로 사는 한 예술대학을 비롯한 예술계의 문제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문제를 꼭 나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활동이 이어졌고 지금에 이르렀다. 시작 때를 생각해보면 그때보다는 조금 더 단단한 단체가 되어 있는 것 같아 기쁘다. 이는 나 말고도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에 그들에게도 감사함을 느낀다.
예술대학생의 문제 해결을 위해 쏟았던 시간도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다. 17년 예술대학생의 문제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는지를 파고들었던 나는 20년, 문화정책을 분석 · 연구 · 개입하는 활동을 하고 있고 기관들과 함께하는 일도 생겼다. 졸업하고 예술은 계속하고 싶은데 뭐해서 먹고 사느냐는 고민이 있었지만, 활동을 통해 불안정하긴 해도 계속 작업을 하면서 문화예술계 언저리에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겼다. 감사한 일이다.

OECD 국가 중 무상교육을 실행하는 국가
몽상이라고 말하지 말아요, 도망칠 수 없다면 함께 바꿔보는 건?
그런 한편, 우리의 처음의 문제의식이었던 공공성의 관점에서 ‘예술대학의 고액·차등 등록금’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나는 내가 쏟았던 4년의 시간에 대해 효능감을 느끼고 싶다. 상반기 코로나 19로 인한 등록금 반환은 많은 학생과 함께하여 환불, 법률안 개정 등 일부 성과를 내었지만, 근본적으로 공공성의 관점에서 등록금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예술대학의 등록금은 근거 없이 높으며, 예술대학의 고액의 등록금과 실기에 대한 낮은 지원 비용은 예술대학생이 계열 중 대출 금액 1위라는 현실을 만들고, 졸업 이후 예술계열의 불안정한 소득은 26.1%의 압도적인 연체율을 만들며 예술 전공자들의 미래를 저당 잡는다.
예술 현장에서 예술의 가치 경시는 불공정한 계약 관계, 낮은 임금, 가치에 대한 몰인정 등으로 나타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예술의 가치 경시는 이공계열 대비 10배 가까운 차별을 받는 국가우수장학금, 취업률 및 산학협력 비율 등을 기준으로한 예술계열에 대한 차별 등으로 나타난다. 이런 대학과 사회를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조금 더 평등한 사회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고 싶고 예술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 받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최소한, 내가 낸 등록금이 나에게 쓰이게 하는 건 불가능할까?
더 나아가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로써 대학의 등록금 인하를 꿈꾸는 것은 불가능할까?
더 나아가 예술가의 꿈이 현실 때문에 좌절하지 않는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것은 불가능할까?
이러한 꿈을 꾸는 건 정말 몽상에 불과할까?
지구 어딘가에는 몽상을 현실로 만든 나라도 있다.
나와 친구들은 몽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오늘도 실천하고 있다.
우리는 몽상가인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은 우리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