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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회

이동연, 학고재 출판사, 2018년 1월

​스터디 기간 : 2020년 6월

​내용

<예술@사회> 스터디 기록은 5장부터 시작돼. 우리가 그 이전 스터디를 기록해두지 않았거든! 대신 그 이전 이야기들은 앞으로의 뉴스레터에 녹여낼게. 기대해줘!

5장. 예술과 검열

본문 읽기 :

<청소년 보호법>은 1996년 학교 폭력의 조직화에 대한 심각함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던 ‘일진회 사건’ 때문에 제정되었습니다. <청소년 보호법>의 주된 규제 영역은 청소년 유해 매체 지정과 고시인데, 제9조 “청소년 유해매체물의 심의 기준”은 다음과 같이 명시했습니다.

 

1) 청소년에게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것이거나 음란한 것

2) 청소년에게 포악성이나 범죄의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

3) 성폭력을 포함한 각종 형태의 폭력 행위와 약물의 남용을 자극하거나 미화하는 것

4) 도박과 사행심을 조장하는 등 청소년의 건전한 생활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것

5)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과 시민의식의 형성을 저해하는 반사회적, 비윤리적인 것

6) 그 밖에 청소년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명백히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것


 

Q1. 인간의 자유와 맞닿아 있는 청소년 보호, 해야 할까? 해야 한다면 이유는? 한다면 어디까지?

짱소

해야 한다고 생각해. 미디어 매체에서 보이는 폭력성에 옮겨가는 것이 일정 부분 있다고 생각하거든. 이게 예술가를 검열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긴 하지만...

뱀수

기준 자체가 애매해서…

라임

맞아. 기준이 애매하다고 생각해. 청소년이 자극적인 매체를 보지 못하게는 해야 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해. 난 어릴 때 레바논 다이빙 영상을 봤는데 매우 충격적이었거든. 그땐 그 영상의 심각성을 잘 몰랐어. 자극적인 것에 노출되면 무뎌진다고 생각해. 그걸 판단할 수 있는 나이까지는 규제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성숙해질 때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말이 너무 애매해. 보호해 주는 사회 시스템은 필요하지만, 성숙하다 / 미성숙하다의 논점으로 하면 안 될 것 같아.

짱소

‘청소년 보호법’의 내용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적용이 된다고 생각해. 영화나 영상도 그렇고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데… 결국 이게 구실로 사용되기 쉽다는 생각이 들어.

라임

다들 사람이 성숙하다, 스스로를 케어할 수 있는 정신을 돌볼 수 있는 지점이 20살이라고 생각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 성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걸 막아 버리면 그건 괜찮은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고.

뱀수

접근 권한은 모두에게 주고, 문제가 생겼을 때 처벌하는 게 맞지 않을까?

라임

어린이, 청소년 때 자극적인 것을 많이 보면, 그것에 대해 무뎌지는 것 같아. 언론도 윤리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

근데 나는 그게 결국에는 검열의 장치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취지 자체에는 동의를 하지만, 책에도 나오듯이, 검열이라고 하는 게 ‘미풍양속’이라는 이유로 검열을 하잖아. 그런 것처럼 자의적으로 검열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 음반이나 영화는 사전심의 제도가 있어. 근데 사실 지금 우리에게 영향을 더 많이 미치는 건 유튜브잖아. 1인미디어엔 검열이 없는데 영화나 이런 거엔 심의제도가 있는 게 좀 그렇다 생각해.

뱀수

유튜브도 성인 인증을 해야 볼 수 있지 않아?

라임

그건 성적인 부분에선 그런데, 성적이진 않지만 유해한 것들도 있지. 

그리고 남자 가슴은 제지하지 않고, 여자 가슴은 제지하는 사례. 이런 경우를 봤을 때 성적인 것과 성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판단도 모호한 것 같아. 예술작품에 대해서도 무조건 검열하기 보다,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교육은 없고 검열만 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그게 성인이 되어서 문제가 생기는 거 같고.

청소년 관람 불가라고 이야기되는 영화들은, 제한상영가를 받은 극장에서만 상영을 할 수 있대. 근데 그 극장이 사실상 없는 거랑 마찬가지니까.. ‘줄탁동시’라는 영화에 대한 사실상 검열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야.

라임

나이 제한보다는 현실과 작품, 허구는 다르다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짱소

동의해. N번방도 그런 교육이 없어서 현실과 미디어를 구분하지 못해서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해. 국회의원들의 인식도 사실상 다를 바 없었다고 생각해서...

 

라임

표현의 자유보다 인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예술작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Q2. 매체 모방론에 대한 생각은 어때? 실제로 영향이 있다고 생각해?
 

뱀수

게임 중독이 될 수 있다는 건 동의하는데, 나는 질병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해.

게임중독이 의학적으로 검증된 게 없대. 중독이라고 하는 게 정말 많잖아. 일상을 파괴할 수 있는 중독이 너무 많은데 게임에서만 중독으로 얘기를 하자면,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이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것들 아니면 상품 소비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만 질병이라고 규정을 하고 탄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노동자가 노예처럼 있어야 하는데 그 생산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규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너무 빨갛나..?)

 

라임

나는 사실 질병이 맞다고 생각해.  단순히 게임 중독이 질병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게임중독이 개인 스스로가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해. 그지만 게임에 대한 규제가 심하다는 것에도 동의해. 

 

뱀수

모방론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해볼게. 게임 중독은 질병이라는 것에 대해서, 게임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에 무감각해져서, 현실에서도 못 느낀다는 주장이기도 하잖아. 그렇지만 영화에서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명대사까지만 따라 하겠지만,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잖아.

 

짱소

영화에서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그게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만  영화에서, 여성들을 착취하고 폭력이 나왔을 때, 그게 실제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아 저래도 되는구나’, ‘저게 당연하구나’ 하는 인식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나는 반영론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이 사회의 기성 질서들이 잘못 잡혀있고 그것들이 매체에 잘못 반영되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반영론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해서.

 

결국, 기성의 사회가 부조리함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고, 더 큰 문제는 기성의 질서들이 잘못되어있다는 거야. 기성의 질서들에 대한 문제 제기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Q3. 책에서는 예술가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제1의 권리라고 하는데, 정말 예술가들은, 예술대학생들은 이렇게 느끼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담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이 있을까?

 

교수님들이 과제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 침해일 수도 있잖아.

 

라임

맞아. 표현한 것에 대해서 성적을 메기는 게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표현의 자유 영역과 지도의 영역을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할 것인가가 관건이라 생각해. 본인의 작업 방식을 강요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근데 내가 느끼기엔 표현의 자유가 제1의 권리라고 한다면 동의 못하는 사람이 적진 않을 거 같아. 블랙리스트 주도자 송수근 씨만 봐도...

 

라임

예대생의 경우에는 본인이 무엇을 표한하고싶은지 잘 몰라서 그러는 경우도 있을 거 같아.

 

헌법 강의가 있어야 할까?

 

짱소

만들자.


 

6장. 예술과 행동

Q1. 예술의 탈제도화에 대한 시도 (아방가르드, 그래피티 등)의 끝엔 어떤 모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누구나 다 예술을 할 수 있고, 누구나 향유하고, 노동해방의 시대가 온다고 하잖아. 4차 산업혁명이 오면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창조성이 중요해지는 시대라고 하는데 일상적으로 예술을 하고, 클래스 101만 보더라도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듣는 사람 많고 하는 거 보면.

짱소

그렇게 되면 다 생활예술이 되는 걸까? 엘리트 주의가 없어질까?

 

없어지지는 않을 듯 ㅎㅎ

 

짱소

결국엔 다시 제도화가 되겠지..?

 

모든 것을 상품으로, 제도로 포섭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성질이지. 근데 뭐 이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헤겔이 정반합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했던 것처럼.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과정을 통해 진보하는 거니까.


 

Q2. 제도권 내에서든, 예술대학에서든 예술행동에 대한 비평과 수용이 대중적이지 않다. 이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일단 학생들이 예술행동에 대한 개념을 잘 모르는 거 같아.

 

짱소

왜 안 가르칠까? 

 

라임

교수님은 사실 그런 이슈에 별로 관심이 없는 거 같아. 그런 게 되게 정치적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하는 거 같고. 우리 과 교수들이 예술은 정치적이면 안 된다고 말하는 교수들도 많아. 

 

짱소

저번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사회적 이슈를 다룬 내용 - 68혁명- 을 발표하니까 ‘20세기 대학생을 보는 거 같다’, ‘어러분들도 이렇게 노력을 해야 한다’ 라고 하셨는데 본인이 그런 것들을 가르칠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

 

교수의 의무는 연구와 교육인 거 같은데.. 사실 역량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거기에 집중이 안 되어 있는 거 같아. 예를 들어 진짜 의미 없는 갤러리에서 전시한 것까지 성과로 쳐주니까.. 그러다 보니까 노답이 많은 것 같....(읍읍)


 

Q3. 예대넷의 운동들이 가치 있지만 일정 부분 플랫폼적, 공중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행동으로서 연대하거나 운동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라임

플랫폼적인 역할 말고 직접적인 행동도 가미되면 좋을 거 같아.

 

짱소

‘목적 없는 운동은 맹목적이고, 행동 없는 운동은 공허하다’ 이런 문장을 읽었어. 우리가 지금 하는 공중전도 좋지만, 행동도 필요하다 생각해.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뀐다고 대부분 생각하지만,  행동이 바뀐 뒤에 생각을 바꾸기가 더 쉬운 거 같거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짱소

일단 행동에 다 참여시키자! 일단 한 번 하고 나면, 다른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선입견은 없어질 거 같아. 

 

과거 운동에서는 1:1로 내 주변 사람들부터 바꿔나갔대. 사실 난 플랫폼적인 역할이 좀 질리기도 해. 그래서 작년 강사법 됐을 때, 월 평균 임금이 68만원이었거든. 그래서 총장들한테 68만원으로 한 달 살아보기 콘테스트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잘 안됐어.. 

 

사실 일상에 갑자기 엮여지면서 나오는 것들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 우리가 이번에 프린지페스티벌에서 ‘혁명단’을 갑자기 하게 된 것도 비슷하잖아. 이런 게 또 예술가의 창조성이라고 생각해. 목적이 없이 모여도, 어느 순간 결합되어서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니까. 장이 중요하고 사람이 중요하다!

 

라임

예술행동으로서 연대할 때, 많은 사람들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다는 점에서 플랫폼도 중요한 거 같아. 플랫폼에서 참여를 독려하고, 다시 현장에서 행동하고.


 

Q4. 비대면을 권장하는 요즘, 예술행동은 어떠한 형태로 변모할 수 있을까?

 

줌으로…

 

라임

SNS를 사용해서 하는 것…

 

근데 그건 공중적인 플랫폼에서 하는 일반적인 운동이지 않나? 예술행동이라고 하는 건 현장에서 발의되는 어떤 운동이라고 생각을 해.

 

라임

플랫폼 운동 사례 중에 기억에 남는 것도 있어! 최근에 ‘둘리챌린지’라고, 그게 한국 애니메이션 협회에서 애니메이션 총량제 폐지를 위해서 시작한 거거든. 애니메이션 총량제가 뭐냐면, 한국애니매이션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방송시간의 일정 시간을 국산 애니메이션을 필수적으로 방영할 수 있도록 해줬기 때문인데, 이게 폐지되면서 전부 외국 프로그램을 방영할 수 있도록 되었다는 거야. 그래서 이거에 저항하기 위해 나온 운동이야.

 

밀양 송전탑에서는 줌으로 시위하더라고.

 

뱀수

광장에 축제하면, 판넬이런 것들을 띄워놓고 보여주는 방식도 있을 거 같아.

라임

필리버스터 어때?! 그 위에 뱀수가 말한 것처럼 판넬 띄워두고. 

 

구체적 사례보다 조건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일단은 비대면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 것들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지. 온라인 회의라는 게 생각보다 괜찮네? 라고 나는 느꼈었거든. 그런 것처럼 감각이나 통상적인 방법들이 전환된 방식들을 사용하는 방식도 있다고 생각해. 여러 장치들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다 보니까 시의적절성이나 직접 참여하는 부분들이 중요한거같아. 어쨌든 온라인으로 하면 좀 더 적극적인 참여를 쉽게 할 수 있지. 둘리 챌린지처럼. 그런 것처럼 방식을 좀 더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도 고민이 필요한 거 같아. 



 

7장. 예술과 기술

 

본문 읽기 :

 

4차 산업혁명이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이라면, 인간을 배제하는 기술결정론이나 경제결정론에서 벗어나,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이른바 ‘신홍익인간'이란 패러다임을 상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p.244

Q1. 구체적인 ‘신홍익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기술이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건데…. 뭐 많지만 … 재생에너지?

 

라임

인권에도 있지 않을까? 흔히 말하는 3D 직업 있잖아. 사람을 갈아 넣는 막 노동 같은 건, 기술이 대체되면, 사람을 인적 자원으로 갈아버리는 그런 건 좀 덜 해지지 않을까? 물론 일자리는 사라지겠지만. 

 

노동자 계급은 노동을 하지 못하니까 재원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올 거라고 하는데.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기본소득 이야기가 나오잖아. 그 패러다임을 어떻게 넘어갈 수 있을까?

 

짱소

얼마 전에 책을 읽었어.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고도 기본소득으로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야. 거기 보면 플랫폼 노동이 늘어나는 상황을 보여주거든. 책에선 그런 모습이 유토피아라고 하긴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디스토피아였어.

 

1,2,3차 혁명은 확실하게 구분이 되잖아. 제반 조건이 바뀐 시점의 혁명으로. 4차 같은 경우에는 사실상, 그게 실제로 있는 거냐 라는 비판이 많았잖아. 마법의 주문처럼 외치는데, 과연 … 철학이 있나? 거기에 코로나까지 더해져서 기술결정론이 강하게 이야기되고 있는 것 같고. 안타까워. 경제 발전 이유도 인간이 잘 살기 위한 건데, 목적이 전도되어 있다는 것 같다고 생각해. 그게 자본주의인 거고. 자유주의가 가장 강한 미국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고 하더라고. 과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양립할 수 없는 체재일까? 


 

본문 읽기 :

 

이러한 예술 창작의 창조적 진화는 새로운  예술의 미학을 생산합니다. 오로지 기술적 신기함만이 아니라 미학적 혁신으로 예술의 장을 바꿀 수 있습니다. p.254

 

Q2. 기술혁신을 통한 미학적 혁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라임

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는 초상화나 풍경, 실제와 똑같이 그리는 게 아름다운 거고, 그런 화가들이 있었는데, 카메라가 나오면서 똑같이 찍는대로 나오 게 되면서 그 패러다임이 바뀌잖아. 그럼 화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생겨났을텐데, 지금은 어떨까?

 

뱀수

화가의 존재 이유가 똑같이 그리기 위해서였는데, 지금은 화가의 존재 이유가 다양한 것 같아. 작가 본인이 정의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 똑같이 그리는 행위라고 해도 그때와 지금의 ‘똑같이 그리는 행위’는 다르다고 생각하거든.

 

새로운 감각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전통적 매체가 있으니까. 전통적 매체도 새로운 감각을 열려고 하기도 하고. 기술론적인 관계(수직적인 관계)에서는 진보성 찾기 어려우니까, 수평성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아. 그리고 페인터들은 상품으로써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도 분명 있을 테고. 그러면 그것도 미술인가 토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뱀수

교수님 작업실에서 작업 도와드릴 때,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는 예술 작품이 있었어. 교수님도 미디어 아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는 했지만, 한 편으로는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했어. 왜냐? 관객이 너무 수용적이게 되니까 그런 것 같아. 감각을 자극하는 요소가 많으니까. 주가 되어 뒤를 상상하는 게 아니라, 감상하고 소비자로 끝나는. 소통할 수 있다고 하지만, 반응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신기하다’라고 끝나버리는.

 

아트선재센터에서 했던 <넥슨> 전시가 기억이 나. 거기 나오는 미디어 작품들이, 이게 예술 작품인가 하는 생각들을 많이 했거든. 인터렉션이라는 측면에서 지금 당장 흥미를 유발하기는 하지만, 이게 예술 작품인가 하는 생각들이 들었어. 아트선재에서는 홍보도 안 하더라고. 그럼 왜 했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

학교다닐 때 구동희 쌤이 하신 말이 기억이 나. “작가들에게 물감이나 기술이나 같은 것. 그것보다는 예술의 본질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한다.”

 

뱀수

<가이아>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 좋았거든. 기술을 오감을 자극하는 용도로 쓰기 보다, 예술의 본질의 의도에 맞게 쓰는 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VR도 지금은 신기하니까 그럴 수 있는데, 예술가들도 이걸 온전히 재료로 바라보는 때가 오면 예술로 스며들지 않을까?

 

반면에, 기술 경도로 끝나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 기술 혁신이 예술 혁신으로 동일시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 예술에서도 좋은 예술과 깊이 있는 예술이 있다고 생각해..

 

라임

부산에서 체험했던 작품이 기억이 나. 위에서 비가 내리는 작품이었는데, 나를 인식해서 비 안 내리게 하는 기술이 들어간 작품이었거든. 기술이라는 걸 세일즈 포인트로 삼는 것 같기도 해. 그래서 사람들이 ‘이 기술 되게 신기하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거지. 그 전시 자체를 ‘기술을 체험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와 어떻게 이런 기술을 썼냐’라고 생각하게 될 거고, 이목을 집중하지만 예술보다는 기술에 더 집중하게 되는 느낌이야.

 

뱀수

과학 박람회 느낌이구나.

 

VR은 물리적 인프라가 너무 많이 들지. 그에 비해서 시장성이 약한 거 같아. 그래서 사양 산업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는 거고.

그리고 이 ‘기술 혁신’이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은 게, 코로나가 터지면서 언택트 예술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 거 같아.

 

Q3. '공연 스트리밍', '유튜브에서 진행하는 미술관 도슨트', 'AR 미술 작품'(폰 화면으로 작품을 보면 작품이 움직임)이 많이 생기고 있지만, 아직 한계가 있는 듯하다. 서드라이프에서 이 방식들은 어떻게 달라지게 될까? + 지금의 한계는 기술이 발전하면 해결되는 문제일까?

 

예술의 감각들이라는 게 있잖아. 발터 벤야민이 이야기 했던 것처럼 아우라라는 게 있고. 근데 스트리밍에서는 아우라고 하는 것들을 느낄 수 없잖아. 지추 미술관 갔는데 그림에 되게 압도되는 경험이 있었어. 그때 이게 아우라구나, 하고 생각했지. 발터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에서 사진이나 영상은 무한 복제 가능하니까, 그걸 긍정하면서도, 아우라를 긍정하는 측면도 있잖아.

 

라임

AR 미술 작품은 교육 현장에서 진짜 많이 쓰여. 학교에서 앉아서 강의식하다가, 이제는 체험 팀 프로젝트 형식을 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쓰고 ‘혁신’을 강조하고 있지. 4차 산업혁명 등 이야기하면서 말이야. 예술이라는 것에 대해서 관심 가지게 하는 스타터 역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도슨트 이런 것들도 실제 전시까지 이끌어내니까. 도입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봐. 진입 장벽을 낮추는 시작 지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라임

<적벽대전> 뮤지컬을 봤어. 발레도 스트리밍 해주는 거 봤는데, 카메라 무빙도 다르더라. 배우들 얼굴도 클로즈업 해주고, 뮤직뱅크처럼. 장단점 : 직접 보면 웅장함이나 분위기가 있겠지, 멀리서 보면 잘 안 보이기도. 영화처럼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 

 

 

 

 

8장. 예술과 거버넌스

 

Q1. 거버넌스란 무엇이며, 예술가들은 어떻게 거버넌스에 참여할 수 있을까? 또한 어떤 예술가들은 "예술가들이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제일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예술가들은 과연  거버넌스에 꼭 참여해야 할까?

 

뱀수

난 통치라고 알고 있었어. 정보 사회론이란 수업을 들었는데, 거기서 나왔다 단어들이, 4차 산업혁명이 오기 전에 거버넌스의 의미는 완전 ‘통치’라고 배웠거든. 4차 산업혁명 넘어오고 글로벌이 오면서 ‘협치’가 되는. 자본이 많은 기업이 올라가는, 수직적 구조가 생기는, 약간의 통치와 약간의 협치 이 느낌으로 거버넌스 이해하고 있었어. 책에서 말하는 예술 거버넌스가 너무 이상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가능할까? 이런 생각.

 

짱소

거버넌스라는 단어가 익숙하진 않았고, 책을 읽고 드는 생각은 예대넷이 거버넌스가 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범수가 말한 개념도 있고 한데 우리가 코로나관련해서 교육부, 대교협, 예대넷해서 거버넌스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거기 공무원이 이건 거버넌스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더라. 관에서 이야기하는 거버넌스는 조직을 만들어서 회의에 참여하는 걸 거버넌스로 정의하고 있더라고. 범수가 말한 거버넌스는 기업 간의 거버넌스인 거고 그래서 거버넌스란 참여하는 태도에 따라 폭넓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교육부에서 생각하는 거버넌스는 너무 올드한 것 같아.

라임

거버넌스가 익숙한 단어가 아니어서 그냥 사람들이 어떤 의견을 나누고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도출해서 행정적인 걸 적용시키는 그런 느낌으로 이해를 하고 있었어. 그랬는데 구글에 거버넌스를 검색해보니까 종류가 엄청 많다. 집단과 문제에 맞는 거버넌스 개념을 설정하고 집어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짱소

태도라는 생각이 들어. 시스템에 들어가면 어쩔 수 없이 수직적이게 될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참여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수평적인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지원 사업을 하다 보니까,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이랑, 지지하는 사람들이랑 차이가 엄청나다는 생각을 하게 돼. 

그런 한편 이 질문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있어. 어떤 예술가들은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게 가장 좋다고 이야기를 하고 교수님들은 예술은 정치적이면 안된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다면  예술가들이 거버넌스에 꼭 참여해야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겨. 

 

짱소

참여해야지! 난 거버넌스가 곧 시민성이라 생각해. ‘예술가는 작업만 열심히 하면 돼.’라는 말에서, 가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의 당사자도 본인인데, 그 환경을 만드는 거버넌스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모순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정확히 같은 생각이야. 왜냐면 우리나라에서 예술가들은 사회적 지위가 그렇게 높지 않잖아. 그걸 정치철학적인 개념으로 봤을 때, ‘몫 없는 자들’이라고 하거든. 근데 몫 없는 자들이 본인의 몫을 요구하는 게 가장 중요하잖아. 

 

본문 읽기 :

 

강원재 소장은 거버넌스의 가치 지향점으로 "주인 있는 거버넌스", "열린 거버넌스", "투쟁하는 거버넌스", "축제적 거버넌스", "우정과 신뢰의 이웃 거버넌스"를 언급합니다. 이 지향점은 국가 예술 정책의 거버넌스를 언급할 때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지만, 예술 거버넌스의 새로운 의미의 해석과 발견이라는 차원에서는 하나하나 매우 의미있는 것입니다.

Q2. 이런 거버넌스 도대체 뭘까? 

 

라임

주인 있는 거버넌스는, 권력이란 게 삼각 피라미드 구조인데, 아래 있는 사람들이 갑론을박해서 위에 전달하는 방식인 것 같아. 열린 거버넌스는 그런 구조 없이, 모두 같은, 수평적인 관계로 참여하는. 축제 : 즐거운 분위기에서 진행하는 걸까? 우정과 신뢰 : 스파이더 맨. 당사자성이 아니어도 되는 그런 게 아닐까?

다른 사람의 생각은?

뱀수

엄청 착하고 배려심 넘치는 사람들만 참여하는 거버넌스. 

짱소

예대넷.

거버넌스가 민관 협치잖아. 그러니까 서로에게 책임감 있는 태도가 중요한데,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해. 자신들의 이권만 생각하지 않는 태도지. 주인 있는 거버넌스는 바로 그런 거버넌스를 뜻하는 거 같아.

 

열린 거버넌스는, ‘관’과 ‘민’이 사람으로 신뢰감을 쌓는 것이겠지. 그러면서도 새로 진입하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거든. 이 경우에는 새로운 사람들을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해.

 

투쟁 거버넌스에서는, 행정이나 권력에 대해 굴종하는 관계가 되면 안 된다는 걸 의미해. 관계가 중요해.

 

우정과 신뢰! 성북 문화예술 거버넌스를 보면, 동네 지역 기반이니까 사람들이 서로 잘 알거든. ‘관’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주체적으로 하고. 그런 면에서 우정과 신뢰의 거버넌스라고 하는 거 같아.


 

Q3. 예술거버넌스를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비대면)시대에 맞게 구축할 수 있는 방안도 있을까

 

뱀수

거버넌스가 대면을 전제로, 만들어진다는 느낌이 있거든. 왜냐면 거버넌스에서는 권한을 넘겨준다고 그랬는데, 거버넌스 만들어달라고 해도 아무것도 안 해주잖아. 말이라도 트기 위해 대면을 전제로 하는 거 같은데, 비대면 기술을 이용해서 대면해 주지 않는 교육부와 어떻게 거버넌스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어.

 

상호호혜와 신뢰와 그런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비대면에서 하기가 힘든 것 같아. 서로 배워가는 태도인 것 같은데, 비대면으로는 팀 빌딩 쌓기 쉽지 않으니까 참 어려운 것 같아. 관계가 쌓여있는 관계에서는 비대면이 효율적인 것 같기도 하거든.

 

라임

나는  왜 비대면이 어렵다고 생각하냐면, 분명 화면으로 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생생한 비언어적 활동이 대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거든. 화상 통화로 하면 대안적이긴 하지만 효율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 대화한다는 느낌이 덜하니까.

 

뱀수

텍스트가 제일 무시하기 쉽고, 그 다음이 음성이 무시하기 쉽고, 그 다음 화상이 무시하기 쉬운 거 같아. 그치만 대면은 무시하기 쉽지 않잖아. 비대면은 도구로 죄책감을 덜어준다는 느낌이 있지. 문자를 무시해도 죄책감을 못 느끼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교육부 앞에 전광판 설치하고, ‘빨리 나와!!!!!!!!!!!!!!!!!!’ 라는 영상 띄우는 건 어때?

 

아니면 줌 24시간 켜 놓고, 올 때까지 켜 놓기. 

 

라임

필리버스터처럼.

 

단식 유튜브. ‘안...ㄴ..ㅕ..ㅇ..하..세..요….’ ‘별풍선으로 밥 사먹겠습니다….’

 

짱소

국회 태권 브이 돔 지붕에 빔 프로젝터 쏘기

 

거버넌스라는 게 기관의 참여가 있어야 하는 건데, 거버넌스 줌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고, 소규모 위원회로 만들어서 할 수도 있음에도 교육부는 의지가 없는 것 같아. 그게 제일 문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