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가이, 송씨에게

​문화과학 89호 블랙리스트 관련 현장의 목소리

한솔빈

계원예대 블랙리스트 총장 비상대책위원장

 지난해 2019년 8월 1일 자로 블랙리스트에 가담한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이 계원예술대학교 총장으로 임명된 후 우리는 계속해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싸워왔다. 그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때로는 수업을 빠지고 총장 사퇴를 외치며 학교를 돌아다녔으며, 때로는 학교가 아닌 국회, 청와대로 향했었다. 수업이 없는 날엔 계원예술대학교 본관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했었다. 문화 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온당하게 규명되지 않은, 미완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라는 격언은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 이 싸움에서 내가 계속해서 품어 왔던 모토였다. 우리는 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어쩌면 이미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수많은 변화를 기대하면서도 계속해서 져왔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말을 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혁명의 출발점이다.

 

 끊임없이 말하다 보면 어느 순간 변화된 일상이 찾아올 거라는 실낱같은 믿음을 가진 채, 우리는 끊임없이 지는 싸움을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우리가 매번의 크고 작은 사태들에서 패배해왔다면, 어째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학교 본관에서 블랙리스트 총장 사퇴를 향한 1인 시위를 하고 있었을 때의 경험 이후로 내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다. 당시 많은 학우들은 나를 격려하며 커피와 빵을 건네주었다. ‘같이 동참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과, ‘나서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일단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지만, 그와 더불어 ‘내가 뭐라고 이런 호의를 받는 걸까, 왜 그들은 나서기 어려워하는 것일까’라는, 묵 직한 생각이 동시에 찾아왔다. 이것은 그들이 나서지 않는 것, 먼발치에서 다소 관조적으로 격려만을 보냈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의 청년 세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게 되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우선 블랙리스트 사건의 규명과 관련하여 관료제 특유의 복잡한 제도적 관계로 인해 모든 것이 교묘하게 작동하면서, 송수근의 책임 소지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자신은 위에서 시킨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은 송씨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블랙리스트 가담자들의 레퍼토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싸움을 비롯하여, 사회의 구체적이고 급박한 현안들에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 역시 중대한 난관이었을 것이다. ‘개인주의’라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뿔뿔이 흩어져 ‘자신’ 너머의 세계를 들여다보지 못하게 된 세상에서 블랙리스트라는 사건은 피해자가 아닌 이상 관심을 두기 어렵다. 오직 자신만이 존재하는, 세계 없는 세상에 다른 이의 절규는 공허한 메아리로 전달될 뿐이다. 답장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먼 공간에서 뿌옇게 들리는 메아리 말이다.

 

 이와 같은 조건 하에서 청년 세대들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당사자성에 이입하지 못한다. 심지어 교내에서도 많은 학우들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비롯한 송수근의 공모 사실을 공론화하는 비대위의 시도를 그저 소란스러운 옆집 싸움 정도로 이해했다. 이런 인식 속에서 학우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따져 보는 것이라기보다, 단지 싸움이 격해져서 소음이 커지면 경찰에 신고하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사회적 조건을 감안할 때 그러한 반응 또 한 이해함 직하다. 나를 비롯한 청년 세대들은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아프고 슬픈 일이 아닌 이상 관여하길 꺼리며, 오히려 그러한 관여를 타인의 문제에 간섭하는 월권이라 생각하는 데에 익숙하다. 나조차도 그저 오늘 하루를 잘 버틴 자신을 보듬으며 소소한 행복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어쩌면 청년 세대 스스로의 자기 극복을 통해서만 돌파할 수 있는 난관일 것이다.

 

 그런 와중에 정치는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예술을 진지하게 대하는 이들에게 블랙리 스트 사태 청산에 관한 막연한 공감만을 권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촛불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다시는 블랙리스트 사태는 없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문화예술인들의 생활 안정과 창작을 지원하고 복지 수준도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이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란 안도감을 주기 위한 허울뿐인 말이었다는 점은 이미 드러났다. 블랙리스트 사태가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블랙리스트 가담자가 계원예술대학교의 총장으로 임명되고, 블랙리스트의 2차 가해가 벌어지는 상황은 무엇인가.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쿨한 말은 그저 안도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공허한 말일 뿐이다.

 

 여러 악조건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막연히 공감할 것이 아니라, 왜 그와 같은 사태가 발생했는지,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말을 건네야 한다. 누군가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할 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철저한 의심이다. 정말 다시는 그런 일은 없는 것인가?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고 사태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늘 의심하고 말을 해야 한다. 블랙리스트 총장은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오늘도 평화롭게 집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