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250원의 직업도 괜찮으신가요? : 예술인 고용보험 너머의 과제
문화과학 84호 예술노동 관련 전문가의 이슈페이퍼
현린
사진가
노동당 대표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공동운영위원장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요? ❓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요? 누군가 제 직업을 묻는다면, 사진하는 예술인, 문화활동가, 그리고 정당인이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그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적어도 지금은 정당인이라고 답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사진가나 평론가로서의 작업보다는,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자 노동당 대표로서의 정치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당직을 맡지 않았다면? 또는 임기를 마친다면? 아마도 사회 비판적인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 건축, 공연, 축제 등 기록사진 촬영으로 생계와 작업을 이어갔을 것이고 이어갈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은 어떠신가요?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요?
초면의 예술인들 사이에서 주고받기 적절한 질문은 아마도 “당신은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일 겁니다. 적어도 예술인이라면, 그 작업이 구상 중이건 실행 중이건, 중요하건 중요하지 않건, 수익이 있건 수익이 없건, 누구나 어떤 작업들을 하고 있을 테니 말이죠. 그런데 저는 대뜸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요?”라고 묻고 답했습니다. 현재의 직업이건 장래의 직업이건, ‘직업으로서 예술’ 또는 ‘노동으로서 예술’의 현실과 과제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싶은 까닭입니다. 해서 듣고 싶습니다.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요? 혹은 당신의 장래 직업은 무엇인가요? 만약 당신의 답이 예술이라면, 작업이 아닌 직업으로서 예술은 과연 안녕한가요?
고용보험에는 가입하셨나요? 📝
코로나19를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거나 일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예술계도 어느 분야 못지않게 피해가 큽니다. 특히 오프라인 전시나 공연, 상영을 전제로 한 작업들은 거의 중단된 상태입니다. 예술인 고용보험 관련 법 개정안이 20대 국회 임기 종료 직전에 원안과 다른 형태로나마 통과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예술계 상황이 조금이나마 알려졌던 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체 노동자 고용보험 가입률이 90% 이상인 반면 예술인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24%에 불과한 것이 현실입니다. 만약 고용보험에라도 가입할 수 있었다면 실업급여를 통해 지금과 같은 위기를 조금이나마 버틸 수 있었을 테니 말이죠.
그런데 예술인 둘 중 한 사람은 수입을 위해 예술 외의 직업을 겸하고 있고, 예술계 밖의 일터를 통해 고용보험에 가입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 전업예술인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24%보다 더 낮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 고용보험에 가입했다고 하는 예술인 중 상당수는 예술계 실직만으로는 실업급여를 받지 못합니다. 또한, 고용보험 가입률 자체가 워낙 낮다는 것은, 비예술계 실직으로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예술인들이 다른 직종을 겸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 예술인 고용보험 대상에 예술노동만이 아닌 비예술노동까지 포함시키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고용보험이 예술계만이 아니라 다수 예술인들이 종사하고 있는 한국의 불안정 비정규직 전반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규직 7%의 직업도 괜찮으신가요? 😨
그러나 예술만으로도 생계와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전에는, 예술인 고용보험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으로서 예술과 노동으로서 예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보완을 하지 않는다면, 위기와 실직, 그리고 불안은 반복될 것입니다. 불안정 비정규직이 날로 증가하는 한국 노동계 전반적인 문제이기도 하나, 특히 예술계의 시급한 문제는 실직에 대한 대응을 넘어 직업으로서의 예술 자체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예술계를 포함한 불안정 비정규직의 경우 실직을 반복하므로 실업급여도 자주 받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고용보험 확대를 반대합니다. 이런 반대에 우리는 “왜 이 사회는 실직을 반복하게 하는가?”라고 되물을 수 있습니다. 정규직 예술인 또는 심지어 예술인 공무직의 증대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예술인 실태조사(2018)에 따르면, 전업예술인 100명 중 이른바 ‘정규직’ 예술인 수는 7명에 불과합니다. 반면 한국의 전체 취업자100명 중 54명 정도가 이른바 ‘상용근로자’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예술계 정규직 비율은 다른 분야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 대다수 예술인은 기간제, 계약직, 임시직, 일용직, 시간제, 1인 자영업자 등 이른바 ‘프리랜서’라는 이름의 불안정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모두들 한류를 자랑스러워 하지만 정작 한류의 바닥에서 일하고 있는 예술인들은 알바 때문에 작업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고, 악전고투 끝에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참여한 작가의 일당이 무려 250원인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뒤늦게나마 이제 실직 대책을 넘어 직업으로서 예술의 가치와 안정성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일당 250원의 현실, 이제는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일 년이 넘는 기간 작업을 하고도 무대에 서는 고작 몇 시간, 전시에 참여하는 고작 며칠 동안만 직업인으로 인정받고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현실을 바꾸지 않는다면, 하루 일당이 250원에 달하는 예술의 불안정성은 계속될 것입니다. 공모와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불안정 비정규직 예술노동을 확대하는 대신에, 작업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고 있으나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활동의 문화적·사회적·경제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확대한다면 가능합니다. 시장 영역에서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당연시되고 있는 예술의 불안정성 대신에, 노동으로서 예술의 정당한 몫을 요구한다면 가능합니다. 예술의 공공성을 강화하여 국공립예술기관을 확대하고 이를 예술인 고용 확대로 이어간다면 가능합니다. 그 누구도 아닌, 직업이 예술이라고 답한 사람들의 문제이고 과제라고 생각하는데, 어떠신가요?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