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과학 84호 예술노동
문화/과학 편집위원회, 문화과학사, 2015년 12월
스터디 기간 : 2020년 6~7월
내용
<예술 - 노동의 역사, 이론적 궤적 : 놀이노동의 신화에서 예술기계의 실재까지>
본문 읽기 :
만일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맑스의 사상을 정확히 따른다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는 확연히 다른 계급적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볼 것이며, 이러한 시차가 낳은 예술문화적 결과물이 어떻게 상이한 계급에게 부합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부르주아 예술의 대다수는 원자화된 개인의 업적이지만, 프롤레타리아 노동은 거의 전부가 집단적 활동의 산물이다. (pg.34)
Q1. 일상적 실천 활동이라는 의미에서 생활예술은 이러한 부르주아 예술을 대치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현재 생활예술은 어떠한 거 같아?
뱀수
우리나라의 부르주아 예술은 어떤 걸까?
준
미술관 같은 것도 부르주아적인 거긴 하지, 엘리트 예술계가 작동하는 방식도 되게 부르주아적이고.
라임
우리나라에 있는 생활예술엔 어떤 게 있는 거 같아?
뱀수
원데이 클래스나 이런 거?
준
도서관, 동아리 활동도 있지 생활문화 동아리. 그래서 생활문화라는 책이 이런 내용을 담고 있더라고.
라임
우리가 그런 거 많이 생활에서 접하잖아. 비쥬얼 이펙트나 픽토그램, 그래픽 같은 걸 많이 접하는데 그런 건 생활예술이 아닐까? 애매하긴 한데.
준
정책적으로 그런 거는 디자인인 거 같고, 광범위한 범위에서 생활에 있는 예술이라고 생각하면 될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여기에 있는 거로 보면 아닌 거 같아.
생활예술이라는 게 문화 민주주의적인 관점이거든. 이 관점에서 나온 게 하나의 슬로건이지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근데 여기서 정책적으로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나왔잖아. 그런 배경들 속에서 위에서 글이 의미하고 있는 바로는 부르주아들의 문화를 향유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국가를 세웠으니까 노동자들만의 문화를 만들자 하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저는 생활예술이랑 맞닿아있는 거 같긴 하거든. 고급 취향인 게 아니라 실제로 자기네들이 만들어내는 문화인 거니까.
지난번에 한 번 얘기한 거 같은데 생활예술이라고 하는 얘기하는 방식이 그런 장르 예술을 공고화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다시 한번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나누고 관객들을 버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긴 해.
라임
우리나라에서 생활예술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원데이 클래스를 예로 들었을 때….
준
정책적 의미에서 원데이 클래스는 생활예술이 아니지 않을까?
라임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그런 정책적인 걸 포함해서 지원해주고 있는데 '경험해 봤으니 됐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좀 색다른 경험? 정도로 생각하는? 그래서 노동자들의 문화, 예술이라고 잘 작동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준
내가 '원데이 클래스가 생활예술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의 경험, 서비스로 끝나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아 큰 거 같아. 지속성이 없고. 물론, 그것들이 나아가서 점점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어떻게 보면 원데이 클래스 같은 경우 수요가 굉장히 높잖아. 근데 뭐 그거대로 하나의 방향성이지 않을까? 클래스로 생계를 유지하는 예술가들도 많고.
본문읽기 :
상황주의자들은 극단적 전망을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출구이자 파열구로서 삶을 회복할 방안을 예술에서 발견하고자 했다. 이는 죽은 노동, 소외된 노동이 놀이적 본성을 되찾음으로써 가능할 것이며, 오직 그것만이 전일적인 교환가치의 지배로부터 사용가치의 본래성을 구출하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따라서 예술을 통한 자본주의의 타파는 노동과 예술이 결합될 때 가능하고, 예술-노동의 범주를 떠나서는 안 된다. 기 드보르가 제안한 그 몇 가지 방식은 다음과 같다. (pg. 46-47)
Q2. 예술적 실천들이 자본주의적 일상을 파열시킬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 최소한의 존재자로서 삶을 유지하면서 이 방법은 어떻게 가능할까? 현재는 작동하고 있는 것이고?
준
상황 주의자가 대표적인 예술을 전유를 통해서 예술 활동을 한 그룹이거든. 거기서 보면 그런 예술실천들이 일상을 파열시킨다고 해. 리슨 투 더 시티나 다른 작가들도 이 맥락 안에서 있는 거거든. 예술실천이 과연 이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나 에 대한 너희들의 의견을 듣고 싶고, 이런 예술 활동들은 대부분 돈이 안 돼. 그러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임
파열이란 단어를 쓸 만큼 강력하진 않다고 생각하고… 말 그대로 돈이 안 되는 것은 권력이 되지 않는… 자본주의 사회이니까. 근데 의미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을 해. 근데 사실 그게 한 명으론 안되는 거 같고, 같이 연대해서 같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준
그 연대하는 게 다 같이 굶어 죽는 거 아냐?
라임
사실 권력이 없는 사람들끼리 좀 뭉쳐야 하는 거 같아. 한 명이면 죽기 십상이니까.
짱소
음... 나도 그냥 예술적 실천들이 돈이 안 된다 했잖아. 근데 돈이 안 되는 걸 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일상을 파열 시키는 힘이 있는 거 같고, 자본주의라는 힘 구조 안에 없기 때문에, 밖에 있기 때문에 힘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돈은 잘 모르겠다….
준
그런 의미에서 보편 복지가 필요하지 않나. 이런 활동을 해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해 줘야 하잖아.
라임
이게 모순되고 웃긴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만약) 내가 저명하고 유명한 사람이야. 셀럽 같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모든 행동이 돈이 된단 말이야. 근데 내가 셀럽인데 자본주의적 일상을 파열시키고 싶어서 어떤 활동을 했어. 근데 사람들은 그걸 다시 자본주의적으로 해석하려 한단 말이야. 그래서 이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하는데 또 그런 사람들이 이야기하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서 또….
준
셀럽 같은 사람들이 윤리적 소비를 증진할 순 있겠지.
라임
그르니까 셀럽들이 주도할 순 없을 거 같아.
짱소
약간 셀럽이라는 것 자체도 자본주의 안에서 만들어진 거니까.
준
그치, 상징자본이니까.
짱소
그래서 후원이 필요한 것 같다.
준
사회적 자본. 예술 하는 사람들이 어떤 경제 자본을 생산하진 않지만, 사회적 자본을 생산하는 거니까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본문읽기 :
근대의 예술가들이 '무용한', 즉 '비생산적인' 자들로 천시 받았던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가치의 일반화된 등가물인 화폐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비생산적’ 활동을 통해 가치 있는 무엇을 생산하는 것은 쉽지 않은 노릇이며,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맑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은 정신적 생산의 일정한 부문들 예컨데 예술과 시문학에 적대적"이라고 단언했던 것이다. (pg.51)
Q3. 자본주의는 예술마저 포섭하지. 그리고 콘텐츠라는 의미에서, 유튜버들의 활동은 전통적인 비생산적인 활동을 하지만 재화 가치를 생산하지 않아? 이에 대한 관점은 어때? 콘텐츠에는 어떤 힘이 숨어 있을까? 그리고 전유적 의미에서 미디어는 사회 변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준
우리가 미디어 이론을 좀 더 공부해야 할 거 같긴 해. 미디어 이론에서는 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 같아.
라임
사회변화의 도구가 분명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사람이 나쁜 걸 가장 먼저 습득한단 말이지. 그래서 미디어에서 좋은 거 나쁜 거 50퍼센트씩 똑같이 있다고 하면 나쁜 걸 훨씬 빨리 습득할 거란 말이야. 그래서 중요하기도 하고….
준
요즘은 예술마저 자본주의로 포섭을 해서 자본을 만들어내는데 콘텐츠라는 의미에서 보면 유튜브 활동들이 어떤 교환 가치들을 생산하진 않잖아. 그렇지만, 재화 가치들을 생산하고.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가 굉장히 고도화된 거지. 그러면 유튜버 같은 경우는 가치 비생산적인 건 데 의미가 있고, 예술은 왜 가치 비생산적인 건 데 의미가 없는 걸까.
라임
왜냐면 유튜브는 돈이 되니까.
준
유튜브라는 게 플랫폼이잖아. 플랫폼에 콘텐츠로 예술을 올렸을 때 조회수가 안 오르잖아.
라임
왜냐면 사람들이 직접 생각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 영화 리뷰 유튜버가 많잖아. 예술을 작품을 보고 내 감상을 얘기하고 이런 거까지 다 포함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그런걸 싫어하는 거지.
짱소
나도 그냥 습관이 된 것 같다고 생각해. 틀어두면 그냥 흘러가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준
그러면 유튜브도 하나의 지배 도구인 거네? 예전엔 교육을 독점했듯이 이젠 유튜브를 통해서 그렇게 하는 거네.
라임
우리가 전통적으로 공부를 한다고 하면 책을 읽고 다시 적고 모르는 게 있으면 찾아보고 그러는 건데 그런 것도 없어. 온갖 전문가가 다 나와서 내가 궁금한 거 검색만 하면 그 사람들이 다 이야기해주는데.
준
그러면 유튜브를 점유해야 하는 거네. 플랫폼씨가 그러고 있지.
뱀수
예전에 들었던 정보사회론이란 수업에서 그래서 문화 권력이란 내용을 중요하게 다뤘던 기억이 있어. 디즈니가 엄청난 문화 권력을 쥐고 있고… 할리우드를 비롯해서.
라임
지금 2, 30대 후반 이쯤이 SNS 플랫폼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세대일 텐데 예전에 이명박, 박근혜가 그런 공작을 했을 때 한참 우파적 경향에 지배적인 경향이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준
그래서 페미니즘이 많이 중요한 거 같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착해 내가 봤을 때. 법이라는 것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만들어진 거잖아. 근데 그 합의 과정을 보지 않고. 독재 시대에 만들어진 법들도 그냥 법이니까 옳다고 생각하고… 특히 문화예술진흥법이 그래.
본문읽기 :
단적으로 말해, 예술-노동은 예술도 노동도 아니다. 인지 노동으로서 예술-노동은 차라리 '발견적 술어'로서 작동하는 수행노동이라 할 만하다.그것은 물질적 산물에 생산을 국한시키지 않고, 비물질적 요소들, 특히 관계성 자체의 (재)생산을 창조의 과정에 포함하는 활동이다. 그렇게 관계를 생산하는 활동은 사회를 구성하는 정치적 행위에 비견될 수 있기에 '삶정치적 노동'으로도 불린다. … 삶정치적 활동으로서 예술-노동이 (재)창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실재로서의 삶이다. (pg.55-57)
Q4. 자신이 경험한 삶정치적 활동으로서 예술이 있다면 경험을 이야기 해볼까?
준
인지 노동이라는 거는 사무노동을 말하는 거거든. 예술노동이 차라리 발견적 술어라고 하는 거는 어떤 것들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거지. 수행 노동이다. 사회에서 여러 가지 관계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발견하는 과정이란 거야. 사회 미학에서 얘기했을 거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적 행위에 가깝다. 삶 정치적 노동으로도 불리는데. 결국에는 예술노동이 재창조하는 게 뭐냐. 스펙터클 화 된 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존재적인 삶이다. 페미니즘 아트나 여러 가지 그런 것들인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경험한 적이 있는지…! 박혜수 작가도 그런 의미에서 그렇고. 일민 미술관 새 일꾼도 그렇지 않나?
짱소
구민자, 안규철..
준
이게 삶 정치적 활동이 오히려 그런 고민이 드는 거 같아. 이게 미술관으로 가는 순간 애매해지는 게 있는 거 같아. 남들이 일상적으로 만나지 않아서 그런 거의 의미는 아닌 거 같은데… 어떻게 만나야 하나라는 지점이 있어. 왜냐면 이런 것들로 됐을 때, 그들을 대상화하지 않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 중요한 예술가의 윤리성 이란말이야. 근데 그걸 어떻게 미술관과 만날 거냐….
라임
나는 음 이걸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페미니즘에 대해서 탈코르셋 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걸 느껴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탈코르셋을 하게 됐고 난 어떤 걸 느끼고 있는지 글 쓰는 사람도 많고 만화 그리는 사람도 많고 그렇단 말이야. 근데 그런 걸 함으로써 SNS에 올리면 사람들이 많이 보잖아. 그래서 사람들이 페미니즘과 탈코르셋과 관계를 만들어주고 하니까 이것 또한 삶 정치적 노동이라고 할 수 있는 거 같아.
민준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예술노동의 권리와 사회적 자본 형성을 위한 예술행동>
본문 읽기 :
예술가는 일상생활 속의 창작활동 속에서, 그리고 창작활동에 대한 자기 확신을 통해서 인정받을 수 있다. 예술가를 전통적인 장르로 구분하여 정의하거나 특정한 자격으로 정의하지 않고, 예술에 대한 활동이나 태도로 정의하려는 시도 역시 예술가의 정의에서 일상과 활동에 대한 고려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pg.81)
Q5. 예술대학에서 계속 작업을 해야만 작가-예술가라는 정체성이 된다는 판타지가 있는 것 같아. 반면에, 작업은 자신이 예술가임을 계속해서 자기 확언하는 순간이기도 한데, 페인터나 연주자 같은 전통적 의미의 창작, 실연자가 아닌 현대 예술가들의 관점에서 위에서 학교에서 나오는 말들을 다시 해석하거나 비판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준
예술대학에서 학생들한테 작업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판타지를 심는데… 그런 한 편으로 작업을 하지 않으면서 예술을 할 수 있는지 고민이 들어.
보면 예전에 예술사회에서 읽었던 것 중에 시간이라는 게 있잖아. 예술가가 작업하지 않는 시간도 창작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내용.
짱소
제가 배웠던 작가님 작업실에선 페인팅 이런 것보단 개념 미술… 약간 자기 생각을 통해서 하는 거 있잖아. 아까처럼 관찰을 통해서 새로운 걸 발견해내는? 어쨌든 그걸 통해서 예술이 될 수 있고?
준
그럼 작업을 안 해. 안 하면서 자신이 예술가라고 그래. 그럼 그걸 인정해줄 수 있을까?
라임
자기가 예술가라는데 그걸 인정해주고 말고 할 게 있나? 물론 복지 정책이나 이런 걸 받기 위한 기준들을 채워야 할 땐 모르겠지만….
준
그래서 예술인 권리보장법에서 예술가를 정의하는 게 중요하긴 했지.
라임
예술가라는 게 그림을 찍어내는 공장인 게 아닌 거잖아. 우리가 말하고 싶어 하는 거를 함유를 시켜서 이야기하는 행위인 거잖아. 그러다 보니까 내가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 준비 기간이 있어야 하는 거고. 그런 순간까지 그림을 그리면서 공장처럼 있어야 할 순 없지 않나 생각하고, 그런 준비 기간이 필요할 것 같아.
짱소
그러면 손으로 창작하는 게 아니라 글 쓰는 사람들 있잖아. 기획자나 비평가라던지 그런 사람들도 예술가라고 생각해?
준
응. 나도 랑시에르의 철학을 많이 읽진 않았지만 거기선 예술과 정치를 중요하게 이야기를 해. 근데 둘 다 공동체의 질감들을 재배치하는 일이라고 이야기를 하거든. 어떻게 보면 기획이나 예술 이런 것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이나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끄집어내서 재배치하는 것들이니까. 오히려 새로운 질감들을 재배치하지 못한다면 극사실주의라던가 하는 작가들은 장인에 가깝다고 생각을 해.
<예술인 복지, 무엇이 문제인가 : '잊혀진' 예술인 복지 정책의 문제 설정>
본문 읽기 :
2007년 민예총,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정책위 등 정책연구단체들과 공공노조 문화예술분과, 영화산업노조, 애니메이션노조, 미술인노조 등 당사자 조직들이 함께 문화예술인 복지제도와 관련된 정책협의기구를 만든다. 그리고 총 네 차례의 출범 워크숍을 진행하였고 2008년 ‘문화예술인복지연대’가 출범하기에 이른다. (pg.107-108)
이는 예술인 복지의 문제가 궁극적으로 문화산업 생태계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실 예술인 복지 의제가 간단하게 복지 정책을 설계하는 문제를 넘어서서 현재의 문화산업 구조를 재편성하는 것과 긴밀하게 닿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앞서 살펴보았듯이 예술 창작자의 문제와 문화산업의 진흥이라는 정책 기조는 어느 정부 안에서건 길항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구조에서 예술인들의 창작 환경을 바꾸는 의미가 곧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70년대식 산업역군 구조'로 끊임없이 환기된다. (pg.128)
Q6. 예전에는 나는 정책 제안서를 쓸 때, 정책의 용어로써 ‘예술인재 양성’이라는 정책적 용어를 쓴 적이 있는데 지금에 와서는 이 용어에 대한 고민이 있어. ‘양성’이라는 말에 들어있는 이데올로기가 느껴지기 때문이야. 그런 한편, 이러한 이름으로 예술가들에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지원이 주어지기도 하는데, 우리가 이 용어에 대해 가져야 하는 관점은 무엇일까?
라임
양성이라는 게 필요에 의해 길러내는 느낌이 있긴 하지.
준
이들이 중요해서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라기보다 산업 역군 구조에 의해서 끊임없이 양성되는 느낌? 세계적이라고 막 부르짖어. 올림픽이랑 비슷한 거죠.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기보다는 마스코트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거지.
라임
여기서 말하는 예술인들 양성이 준이 말한 것처럼 가치를 인정해서 예술이 사회에 들어갔을 때 역할을 한다는 가치를 인정해서 양성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 거 같아.
준
문화침략도구인거죠. 문화산업의 천명이랄까.
라임
피겨 스케이트 이런 거 보면 제2의 김연아를 기르기 위한 선수 양성, 이런 느낌?
준
근데 한편 이런 거 말고 다르게 표현하는 게 애매하긴 해. 예술인 양성을 해야 하므로 이러 이러한 지원이 필요하다, 라던지. 그래서 이런 단어들을 쓰지 말아야 할까, 아니면 다르게 풀어서 써야 할까. 청년기획자 양서 이런 말도 있잖아.
짱소
대안 용어가 있을까?
준
대안 용어가 없으면 용어 자체를 폐기해야 할 수도 있지.
짱소
근데 듣고 나니 이 단어를 앞으로 안 쓸 거 같아.
본문읽기 :
예술인의 삶이 위태로운 것은 예술의 본질적인 속성이 아니다. 또한 예술인 복지를 주장하는 것이 예술의 국가권력에 대한 복속을 용인하는 것 역시 아니다. 국가는 공공재를 분배하는 공동의 규칙이 실현되는 장이며, 이런 규칙을 만드는 일에 개입하고 갈등하고 싸움을 하는 것은 예술가의 일이자 시민의 일이기도 하다. 지금의 예술인 복지는 아예 새롭게 설정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 다시 예술인들이 요구하는 사회운동을 고민해야 한다. (pg.128)
Q7. 액션 그룹으로서 예술대학생 네트워크 예술인 주도의 사회운동을 어떻게 전망하며, 긍정적으로 본다면 어떤 방법을 상상할 수 있을까?
준
복지뿐만 아니라 권리를 위한 활동에서 어떻게 전망을 하냐. 사실 우리는 이미 하고있잖아. 조금 공중전인 느낌은 있지만. 근데 이게 지속될 수 있을까?
라임
우리 중에 순수예술이 좀 많잖아. 그래서 예술의 범위를 좀 확장해서 사람을 모을 필요가 있는 것 같아.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이나 서브컬쳐까지. 우리가 지금 예대넷이잖아, 근데 내년에 청년문화연대 이런 쪽으로 확장할 거잖아. 활동 범위를 넓힐 거면 활동가도 그런 분들이 들어오면 좋을 거 같고.
짱소
범위를 넓히면 활동가들도 자연스럽게 올 거 같아.
라임
친구들 중에 만화창작학과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들은 예술을 한다고 생각을 안 해.
<예술노동과 예술행동을 둘러싼 사회적 의미와 흐름에 대하여 : 예술노동과 예술행동은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본문 읽기 :
안타까운 것은 '노동자성'을 획득한 예술 노동자들이 진정한 노동자성으로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예술상품 생산 과정에 도구화된 자신의 창작 표현 행위를 본래의 예술노동이 갖는 사회적 역할 부문으로까지 확장하려 하지를 않습니다. (pg.182)
Q8. 일민 미술관의 ‘입법극장 - 시각예술가는 어떻게 돈 벌어요?’라는 기획에 참여한 후, 사석에서 “예술가들이 작업의 내용으로써는 노동/젠더 등 진보적 내용을 사용하고 그것이 현대미술이라는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실제로 정치적 행동들과는 거리를 둔다”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 이를 “부르주아 문화의 소재에 대한 도구적 활용 혹은 장식적 활용”의 측면에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을들의 소시민적 태도”로 보아야 할지.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라임
을들의 소시민적 태도에 가까운 것 같아. 나도 그렇고 많은 사람이 지적을 받는 거에 대해 굉장히 거부감을 가진 것 같아. 그래서 이런 진보적 내용을 하면 갑론을박이 많단 말이야. 근데 정치적인 내용으로 소통을 하면 그런 것들을 마주해야 한단 말이지. 그래서 그런 상황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 내가 이런 거를 하더라도 그런 상황을 마주치고 싶진 않아, 이런 생각?
준
그럼 활동가들, 즉 첨병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후원이나 지지라도 해줄 수 있는데 그것으로도 이어지지 않는 거잖아. 오히려 수준 낮다고 생각하거나. 이러한 인식은 작년 계원예술대학교 블랙리스트 총장 취임식에 갔을 때 크게 느꼈어. 그 자리에서 어떤 하객이 피켓을 들고 행동을 하는 학생에게 "수준 떨어지게 뭐하는 짓이야!"라고 하는 거야. 어떻게 생각해?
짱소
자기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보았을 때 부르주아 문화의 소재가 된 거 같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긴 해. 작업을 시작할 때는 그렇게 시작한 게 아닌데 완성을 하고 보니 내가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찾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을 했었대.
라임
후원은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사회 분위기 탓 같고, 이 사람들이 후원 시스템이 잘 안 돼 있는 거 같기도 해. 트위치나 유튜브 이런 것들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데 개인한테 후원하는 거는 내가 직접 계좌번호를 눌러서 보내야 하는 상황인 거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런 간편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고.
짱소
근데 나는 소위 패션 좌파도 의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동물권 봐도 피터 싱어라고 동물해방 책 쓰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이 책을 써서 담론화가 되고 그랬거든. 근데 그 사람이 비건인 건 아니야. 그 사람이 직접 실천하고 있진 않지만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담론화를 시킨 거잖아… 아 근데 이것도 소시민적 태도로 봐야 하는 건가…
라임
일반적인 대중들은 미술관에 훨씬 많이 간단 말이야. 그러다 보니까 그런 데서 접할 수 있는 담론 주제들? 제도 내에서 그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한 거 같아. 현장에서만 뛰면 볼 사람들만 보고 안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 같아서.
라임
일과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더 필요한 거 같아.
본문읽기 :
실제 한국사회에서 엄밀히 보면 "예술가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는 문제 설정 자체가 온전하게 개인의 영역과 책임으로만 제한되어 있습니다. 직업군이든, 뛰어난 창작 주체든, 현장 예술가든 상관없이 예술가의 형성 메커니즘이라는 것이 진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pg.190)
Q9. 예술가의 형성 메커니즘은 현재 어떻다고 판단하며,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라임
전적으로 인적 자원에 의지한다. 인맥에 의존해서 대학원에 간다던가, 인맥 풀을 넓히고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서 뻗어 나가려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엘리트적인 것이 강한 느낌이다.
뱀수
맞아.
준
그치 사실 뭐 예술가의 형성 메커니즘이라고는 하지만 예술교육인 거잖아. 수월성 중심교육이라고 하지, 행정적 용어로. 쉬운 말로 하면 우수성. 탁월함이라는 뜻인데, 얼마나 더 잘할 건지에 대한 교육이고, 예술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전혀 가르치지 않고.. 기술만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의미에서 예대넷이 대안학교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 방향성이 중요한 것 같기도 해.
짱소
동의…보감….
뱀수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 이야기해볼까?
라임
짱소가 발제문에 썼지만, 예술가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대안 교육이지 않을까? 예술가를 형성하는 메커니즘 즉 교육에는 기술적인 것보다 약간 정신에 관한 교육이 더 추가되어야 할 것 같아.
짱소
이전 서울문화재단 포럼에서 학교는 현장에 있는 제도를 답습하는데, 학교는 현장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에 학교는 답변이 없는 것 같다. 예술 하면 창작, 제작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데 예술 전반과 관련된 법이나 정치 등에 관련된 이해를 할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
준
좀 액션 적인 방법으로 생각을 하면, 두 가지가 필요한 것 같은데, 하나는 제도를 바꾸는 거고, 하나는 당장 그 제도를 바꾸기 힘들면 우리가 대안적 실천을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거에 대해 얘기를 해볼까? 왜냐면 이 위의 얘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니까… 교수들 모가지 따야지.
라임
모가지라고 하긴 했지만, 밥줄을 쥐고 흔들어야 하지 않을까?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지만, 안정적이니까 그들이 발전 없이 고이는 거 같아.
준
선언문 이런 걸 써야 하나?
짱소
어떤 선언문?
준
공통으로 그 포럼에서 이야기했던 게 주체의 실천들이 중요하다고 그랬잖아. 그런 걸 봤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이 명문화되어 있는 게 있다면, 계속 명시되고 유통되면서 구심점이 되고 교육의 주체들은 압박감을 느끼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 명문대로 제도가 바뀌도록 요구를 하고 우리도 그런 명문을 지킬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거지.
짱소
하나 있지 않아? 작년에 냈던 입장문,
준
예전에 냈던 약간 입장문 같은 거라서.. 어쨌든 하나 만들어두면 좋을 것 같긴 해.
짱소
예대넷 내부 토론회 해도 진짜 좋을 거 같아.
본문읽기 :
사실 지금까지 예술행동에 대한 특징은 사회적 이슈나 사회적 투쟁에 대한 기여는 많이 하지만, 예술가 스스로의 자기 권리나 예술 생태계에 대한 권리 투쟁은 매우 미약한 것이 현실입니다. 국가적이고 대의적인 운동, 어떻게 보면 형식은 많이 바뀌었지만, 사실 어떤 면에서는 민중미학 시대의 태도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거죠. 예술가 자신을 위해서 싸우는 건 멀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pg.205)
Q10. 학생, 청년으로서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위해 했었던 활동들에 대한 평가와 우리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 행동에 대한 상상을 해보자.
뱀수
우리 활동의 주체가 되는 연령층이 높아지고 있는 느낌이라, 예를 들면 17년은 예대생이었다가, 지금은 고학년이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랑 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있는 느낌이 들긴 한다.
라임
최근에 인스타그램을 봤는데 코로나 때문에 과제전을 못한 학교들이 많아서 몇 명의 학생작가가 모여서 온라인으로 전시하는 계정을 봤다. 학생들이랑 많이 할 수 있는 장이 있고, 학생들이 동의한다면, 학생들이 의제 같은 주제로 SNS로 온라인 전시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준
사실 잘 모르겠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게 중요하긴 한데, 내가 보기엔 엄청난 대중성보다는 실질적으로 수행할 사람이 중요한 느낌이랄까. 무슨 느낌이냐면 어떠한 의제를 가지고 전시를 한다고 했을 때, 다수가 참여할 수 있는 전시보단 소수라도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더 적절하지 않나 생각해. 그니까 그냥 이게 예술로 소비될 거 같은 느낌인 거야. 참 어려운 것 같아.
라임
내가 수업을 듣는 방식이 학생들이 모여서 작품을 가져와서 작품에 관해 얘기하고 하는 그런 구조로 진행이 되거든요. 그래서 프락치처럼 우리와 비슷한 학생들이 각자 학교에서 “저는 예술노동에 대한 작업을 해봤습니다” 하면 재밌지 않을까. 준 말에도 동의를 하는데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 나는 약간 얇고 넓게 퍼트리는 거를 중요하게 생각을 해서… 만약 내 동기가 그런 주제로 발표를 하면 되게 재밌을 거 같아.
짱소
예술탄탄도 넓은 의미에서 예술 행동이지 않을까?
준
예술탄탄도 그런 의미에서 되게 예술 행동이라고 생각해. 오히려 그래서 비상시 모임이나 이런 기획들이 중요한 것 같고, 운동에 있어 코어 층을 늘릴 수 있는 친구들을 만드는 중요한 자리라고 생각을 하는데, 17년부터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많이 했는데 그게 얼마나 유효했나… 유효하긴 했지만 앞으로 얼마나 계속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계속 단일 플랫폼이 줄어들고 학생회를 통해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있고, 얼마나 남았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 거야. 이전까지 하던 방식은 공중에 뿌리는 방법이어서 운동을 하는 실질적인 주체를 만드는 거는 아닌 거지. 그런 면에서 공중으로 뿌리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현장에서 만날 수 있을까?
라임
사실 두 개가 같이 가야 하는데 우리가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까, 어디 하나에 집중하면서 그렇게 되는 것 같아.
준
그러고 또 평가해보면 여태까지 우리가 해온 활동이 예술행동의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아. 그런데 앞으로는 예술행동이었으면 좋겠거든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가깝게는 차등등록금 위헌운동부터 어떻게 우리가 예술 행동화 할 수 있을까?
라임
관련 의제에 관해 예술행동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는 테이블이 열려도 좋을 것 같아. 넓게 보면 우리가 보내는 메일링이나 텍스트를 통한 것도 다 예술 행동일 수 있는 거고, 창작을 통한 것만 예술 행동일 수도 있는 거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겠지만 이야기해보면 좋을 거 같아. 우리 단체 안에서 합의가 필요할 것 같다는 느낌?
여기까지가 <예술노동>에 관한 이야기야! 이 뒤의 내용은 문화과학 84호 내에 있는 다른 이야기들 :D 흥미로운 내용이 많으니까 시간이 괜찮다면 함께 읽어봐!
<예술텃밭에서, 저항하다>
본문읽기 :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연극계를 움직이는 자본과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우리의 열정을 소진시키고 우리가 만들어낸 작품을 소비해 버릴 것인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pg.215)
Q11. 도시와 예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또 서울을 벗어나 메인 씬 변방(지역)에서 예술 활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 이유는? 또,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조건들이 되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해?
라임
변방 지역에서 예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긴 해. 왜냐면 지역에는 공간이 많잖아. 그러니까 공간을 활용하는, 작업실을 크게 한다던가, 공간을 이용한 그런, 서울에서 할 수 없는 그런 걸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지역에서 진행하는 게 다 관광유치 목적으로 하는 지역 살리기 그런 식으로 소비가 되는 것 같아서, 그게 맞는 방향이냐는 생각이 있어. 지역이 살아나야 하는 게 맞는데, 지역이 먼저냐, 예술이 먼저냐 목적성의 느낌? 변방 지역은 부산이나 그런 게 아니라, 광역시를 뺀 지역.
짱소
나도 가능하다고 생각해. <공장미술제>라고 하는 지역에 있는 공장을 미술제 하는 공간으로 꾸려가지고. 근데 그것도 약간 지역 살리기랑 연계해서 하는 느낌이었어.
뱀수
가능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힘들 거라고 생각해. 서울이면 재료를 빠르게 주문하고 배송 받을 수 있지만, 거기서는 비용도 많이 들 거고. 남원에는 없더라고. 거기는 사람 찾는 것도 힘들어.
라임
그 예술을 사람들이 봐줘야 하는 게 필수조건이라면, 지역이 어려울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면 괜찮지 않을까?
짱소
순천아트페어 얘기했었잖아요. 새토우치트리엔날레였나? 이것도 일본에서 하는 건데, 엄청 섬이 많은 지역이 있거든? 거기에서 배 타고 다니면서 섬 전체가 미술제 라고 해야 하나… 그 예술 축제하는 공간이 되는 거야. 그런 식으로 약간 지역의 특성? 지역만의 장점을 살리는 방법 이런 것도 있지 않을까? 근데 지역에서 예술을 하는 게 쉽지 않을 거 같다고는 생각해.
<부산의 문화적 현안과 플랜비문화예술협동조합>
본문 읽기 :
하지만 공공기관이나 대학에 기반을 둔 연구소는 문화예술 분야에 특화된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문화예술 현장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수도권의 전문 기관 또한 지역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플랜비는 대학에 기반을 둔 전문 연구자뿐만 아니라 현장 전문 인력이 참여하여 연구의 전문성과 더불어 현장성을 강화하고 지역의 환경과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예술 정책과 실행 방안의 연구와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pg.240)
Q12. 대학에 기반을 둔 연구소의 종사자는 대학원생과 교수들일까?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에게 현장성이 부족하다면 그들에게 현장성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은 없는 것인가? 대학들이 현장에 있는 전문가들을 잘 고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임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짱소
근데 교수들은 다 현장에 있는 사람 데리고 오지 않아?
준
현장에 대한 정의가 중요할 것 같은데? 현장을 무엇으로, 범위를 어느 정도로 보느냐?
짱소
나는 문화예술계에서 뭔가를 하는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뱀수
학교에서 정의하는 현장성 있는 선생님들은 왕성하게 활동하는 예술가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라임
얘네들이 생각하는 것은 전문성 = 현장성인 것 같아. 학생들은 경험이 없으니까,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 사람들 머리에는 엘리트 예술계가 있으니까.
준
나는 본문 말 되게 공감하는데, 왜냐하면 대학에서 생각하는 전문가는 딱 엘리트적인 사람인 반면에 실제 문화예술 현장에서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영향력 있고 더 신뢰할 만 하지. 그래서 교수들 불러서 이야기하면 현장과 괴리되는 것이 나오기도 해. 그러다 보니까 정책 짜거나 자문할 때 교수들을 부르지 않으려는 것 같아.
짱소
근데 나는 내가 수업을 들을 때 교수들이 준이 얘기한 것처럼 현장성을 잘 모르는 교수들이 있긴 하지만, 이번엔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거든. 현장에 계시기도 했고.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해 공감이 잘 안 됐던 거 같아.
라임
반반 만 이해가 가는 게, 정교수는 약간 현장하고 떨어진 지 좀 됐어. 왕성하게 활동하진 않아. 자기가 쌓아온 커리어를 기반으로 교수를 하고 있기도 하고. 근데 젊은 강사 선생님들은 왕성하게 전시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많고.
준
현장성에 대한 교육은 필요하지~ 완전히 필요하고 그거 때문에 이번에 청정넷에서 그 정책 짰던 거 아니야. 지역문화랩 이 딱 그 문제의식에서 나온 거거든. 이들에 대한 정책적인 호출은 되게 많은 것 같아.
짱소
그러네, 교수들한테 지원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네.
라임
작품을 팔 생각만 하는 거지.
준
근데 그들만 탓할 순 없는 게 예전엔 그게 유효했고, 연구자라는 게 자기 생각을 계속 관철하는 게 중요하긴 해. 근데 또 강사나 겸임 교수들은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지만, 거기서 첫 번째 사각지대로 강사법 문제가 발생하는 거지. 예술 같은 경우에는 다른 전공들이랑 다르게 현장이랑 많이 연결돼있어 많이. 다른 전공들에 비해서 자기 전공을 졸업 후에 완전히 포기하는 경우는 적은 거지. 실질적으로 그 일치도도 크고. 근데 학교 내에서 그 현장성이 중요시하게 여겨지지 않는 거야. 교수들은 안 해봤으니까 할 수 없고. 그래서 부차적으로 채워지는 영역이 필요한데, 강사가 없어… 부분적으로는 생존방식의 하나로서 대학에 나와서 수업을 하는 것일 텐데.
두 번째로는 정책적으로 배제된 거지. 문화예술 지원사업에서 학생들 안 받잖아. 일단 지원사업을 한다는 거는 돈이 필요하고 세금으로 진행하는 거기 때문에 그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안 그래도 예술영역에서 하기엔 쉽지 않은데, 학교에서 현장성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학생들이 지원사업을 따내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 같아. 그렇다고 또 아직 선배 세대에 대한 정책도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들만 지원해주는 정책을 만들기엔 세대 간 갈등이 생길 수 있고 공기관에서도 학생들을 신뢰하기 힘들지. 그런 사각지대가 있고…
세 번째 사각지대. 종합대학에서는 취창업센터에서 예술의 현장성에 대해 다뤄주지 않아. 그렇다 보니까 대학 안에서 계속 문제가 발생하는 거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예술도 어쨌든 사회와 관계를 맺는단 말이지. 그거에 대해서 예술대학은 이야기하지 않아. 기본적으로 예술교육의 정당성 근거는 예술이 가진 사회적 가치란 말이야. 예술적 가치. 국민으로서의 인정. 그러니까 자영업자들 굶어 죽지 말라고 지원해주는 거랑 똑같은 거지. 근데 예술에 대한 사회적 가치에 관해 이야기하지 하지 않으니까 계속해서 이런 사각지대가 생겨나는 것 같아.
본문읽기 :
부산의 문화적 현안인 하드웨어 중심의 정책적 지원, 문화 거버넌스의 부재, 문화예술 생태계 취약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책 수립 과정에서부터 민간 전문가들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 (pg.242)
Q13. ‘민간전문가’의 기준이 무엇인지? 정책 수립 과정 이전에 ‘민간 전문가’에 대한 기준이 정해질 텐데 기준이 정해지는 과정에 개입할 필요는 없는 것인지?
라임
생태계 안에 있는 현장성을 가진 사람 말하는 것 아닌가? 근데 민간이란 건 전문 정책자 외의 사람을 이야기해서 그런 것 아닐까?
준
민간 전문가란 경험 있는 당사자 이야기하는 것 같아.
라임
중요한 건 학위 유무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준
확실히, 결국 거버넌스 이야기인 것 같은데, 태도와 경험이 이야기하는 거라고 생각해. 학벌 지상주의적인 태도는 분명히 버려야 할 것이고,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하고 영향력을 가졌는가가 중요한 거 같아. 그 기준이 정해지는 과정에 일정 부분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 개입하는 게 규약이나 규정의 형태는 맞을지 잘 모르겠어. 지속해서 개입하면서 그 태도들을? 바꾸고, 그런 것들을 통해서 지속해서 경험하는 형태. 거버넌스라는 게 계속 교류하는 과정들이니까 그런 것들이 되게 중요한 거 같긴 해. 근데 부산은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거지. 서울은 그런 거 같은 게 좀 잘되고 있는 것 같은데. 각 지역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모르겠네. 지역에 가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그 유지들이 잡고 있다는 이야기가 항상 나와. 특히 교수들. 그래서 지속해서 개입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
짱쏘
지역이 중요한 것 같다. 친구가 대구에 있는 예술고등학교에 나왔는데, 대구에 있는 미술대학을 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서울 이런 곳을 가면 배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어. 교수들이 지역에서 권력을 잡고 있어서… 특히 개입이라는 측면에서 지역에서 이 활동들이 더 많이 잘 돼야 하는 것 같아.
Q14. 지역문화라는 개념은 어떻게 잡혀 있어? 지역문화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어? 지역문화 관련 활동을 해보고 싶은 게 있어? 있으면 어떤 것이야?
짱소
지역문화라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어. 이게 비건을 하잖아? 이런 채식 관련한 비건 가게 같은 게 마포구 합정 이쪽에 많단 말이야. 근데 그게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마포구에 문화가 형성이 돼 있는 거고 그래서 거기 사는 사람들이 더 접근하기 쉽다 보니까 그 지역의 문화가 되고, 지역이 가지고 있는 가치 같은 게 계속 순환이 되고 하는 것 같거든. 그래서 지역 문화나 지역에 있는 환경이 되게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지역에 주체들, 사는 사람들이 목소리도 많이 내고 그런 공간이 지역이니까 중요한 거 같고 그래.
뱀수
지역문화에 대해서 예전에 포스트 로컬리티!! 사업 기획 할 때, 동작구에 대한 지역성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우리가 어떤 문화예술 행사를 할 수 있을까 해서 고민해서 진행했었는데, 거기에서는 에티오피아 이주민들이 되게 많았어. 그래서 이주민들이 에티오피아의 전통 놀이를 조사했고, 우리나라의 땅따먹기와 비슷한 놀이문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에티오피아와 한국 어린이들이 말은 안 통하지만, 땅따먹기라는 같은 규칙의 놀이로 신체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행사를 해보자. 음식도 에티오피아와 한국 음식 준비하고. 초청공연도 하고. 그래서 지역문화라는 게 사람이 살아가면서 중요한 요소인 것도 있지만, 결국에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생긴 것인 만큼 지역민들이 잘 융화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북클럽 제 13회 『서비스 이코노미 : 한국의 군사주의 · 성노동 · 이주노동』>
본문읽기 :
선생님의 개념들은 전통적으로 저 같은 한국의 좌파 남성들이 사용해왔던 개념들이 매우 젠더블라인드되어 있다는 것을 아주 잘 드러내는 개념이었다고 느낍니다. (pg.254)
Q15. 어떤 단어들이 있을까? 알고 있는 단어들보다 우리가 생각 못한 것 중에서. 예를 들면 우리가 카톡방에서 나눴던 ‘귀엽다'와 같은 것? (우리는 '귀엽다'는 말에서 위계를 느낀다는 얘기를 나눴었어!)
준
어제 문화연구와 관련된 책에서 읽었는데 87년 즉, 민주화 이전과 이후로 구분을 하더라고 그전엔 모순을 어떻게 볼 것이냐. 우리나라를 계급모순으로 볼지 민족모순으로 볼지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그룹은 부르주아들을 타파해야 하고, 어떤 그룹은 식민지,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80년대 이후에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해. 페미니즘이 나오고, 우리나라가 계급모순과 민족모순만 이야기하면서 여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는거지. 어떤 게 있을까? 가장 일반적인 것은 조직 내 성폭력이나 젠더 이슈. 대업을 완수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때문에 여성이 성폭력을 고발할 경우, 그 여성을 조직적 단결성을 해치는 존재라고 인식해버리는 것이지.
라임
16-17년도 박근혜 퇴진 시위에 참여했었는데, 그중에 제일 열성적인 사람이 있었는데 여성 혐오적인 표현을 섞어서 이야기를 했었어. 예를 들면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 등, 대의를 위해서 사소한 것은 무시하는 태도가 있었지. 이게 또 해당되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의당이랑 했던 기자회견에서 내가 먼저 도착해서 카페에 앉아있었는데 거기서 노동 투쟁을 하는 무리가 있었어. 거기에 대부분 아저씨고, 젊은 여성은 한 분만 있었거든. 근데 그 커피 나오는 거를 그 여성분이 혼자서 다 들고 아저씨들한테 나눠주고 계신 거야. 낮은 직급이 그런 일을 한다고 하는 것도 웃기기도 하지만, 다 같이 투쟁하는 사람들인데 그렇게 하는 게 웃기고 이상하긴 했어.
뱀수
고등학교 친구들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성 혐오와 관련된 현상들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개인의 개별 문제로 치환해버리더라고. 그런 친구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했던 경험이 있어?
라임
시도하다가 포기했어.
뱀수
사실은 나도 그런 생각들을 했었는데, 처음에는 억울했거든? 남성이라는 이유로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해당 문제가 남성과 여성에 대한 성별 권력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 있었어.
라임
계기가 있었는지?
뱀수
기억이 안 나. 어느 순간 느끼게 되더라고. 내가 여성들이 많은 집단에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라임
사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것) 남성이든 여성이든 있는데, 여성은 공감을 통해서 설득할 수가 있는데, 남성은 어려운 것 같아.
본문읽기 :
제가 이 책을 굉장히 정치적이라고 받아들였던 이유는, 왜 각각의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이 연대할 수밖에 없는가를 너무 잘 보여주는 분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까지 혁명이라는 건 산업노동자들의 방식으로 조직되어 왔고, 그러다보니 좌파-남성-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여성이라든지 이주노동자들 같은 이들이 배제되었던 건데요. 그런 방식으로는 자본주의와 싸울 수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분석이라고 생각해요. (pg.280)
Q16. 페미니즘은 어떤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해? 너희가 가지고 있는 페미니즘적 태도, 지향성은 어떤 거야? 그것들은 우리들의 활동에 어떻게 교차할 수 있을까?
짱소
나는 아까 했던 이야기에 이어서, 지금의 가부장제나 그 위계 폭력구조 자체를 인식하고, 우리가 계속 대안을 찾으려고 하고 있잖아. 그런 모든 실천 자체에서 의미가 있는 거 같아.
뱀수
우리들 활동이랑은 이미 교차되고 있지 않나?
짱소
어떤 의미에서?
뱀수
우리가 뭔가 하나를 하더라도, 이런 고민들이 어느 정도 기저에 깔려있지않아?
짱소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 자체가 존중, 자유, 연결 이런 거라는 맥락으로? 나도 연결되어 있다는 거에 공감을 하는데 왜 연결돼있나 생각을 해보니까 지향하는 가치들이 같기 때문인 거 같고, 계속 구조를 인식하려는 태도들도 페미니즘과 연결돼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야.
뱀수
동(의보)감해.
본문읽기 :
저의 학교의 경우 인문학이 필요 없다는, 인문학을 경시하는 관점에서 모든 문학을, 영문학, 미국문학까지 포함해서 문학학과에 한꺼번에 몰아넣었어요. 그렇게 있다 보니 여러 분야에 있는 분들과 대화를 하죠. 비공식적이죠. 개인적으로 항상 리딩 그룹, 세미나 식으로 대화 하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미국에서도 연구자간의 교류의 채널이 공식적으로 체계화 되어 있는 것은 아니에요. (pg.285)
Q17. 오늘날 대학에서 잃어버린 건 세미나 문화라고 생각해. 2016년에 일민 미술관에서 김용익 작가가 전시했을 때, 타임라인에 홍익대학교 학술제 관련 내용이 있더라고. 학교에서 학생회실을 청소하는 과정에서도 학생회 차원에서 90년대 포스트 모더니즘을 격렬히 토론했던 자료들을 발견했어. 나도 요즘 세미나나 발제를 준비하면서 배우는 것이 참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세미나 문화를 서비스화된 학교에, 그리고 우리 단체에 적용할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짱소
우리가 지금 하는 게 그런 거 아닐까? 세미나랑 조금 다르긴 하지만 (스터디). 이미 서비스가 되어버린 사립대학에 이걸 적용할 수 있을까?
뱀수
나는 차라리 적용 안 됐음 좋겠어. 우리가 새로운 의미의 학교를 다시 만들 수 있는 거니까. 예술대학이 정말 이상적으로 잘 굴러가면 우리 단체는 있을 필요가 없는 거고. 그러니까 대학들은 너네 하던 대로 서비스 기업이 되어라. 그리고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학교를 세우겠다. 이런 거지.
짱소
근데 나는 예술대학이 잘 굴러간다고 해도 우리 단체가 필요 없을 순 있어도, 그니까 뭔가 학생들이 주체성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는 곳이어서 우리 단체를 좋아하는데, 근데 그 학교에서 이런 세미나 문화 이런 거나 학생회도 그렇고 이런 태도를 가지고 실천하는 그런 게 없기 때문에 내가 계속 이 예대넷에 있으려고 하는 것도 있는 거 같고. 그래서 나는 만약에 이런 토론이나 주체들이 목소리를 내는 문화 자체가 잘 형성이 되면 좋을 거 같아. 학교 내부에.
<NPO와 공생 카페 : 지역 생협으로 발명한 '동아시아 공생 대학'>
본문읽기 :
단지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이 삶이 될 때, 지치지 않는 '기쁨'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모두가, 즐겁고 신나하던 2015년도 구마모토 가쿠엔 대학의 동아시아 공생 영화제 풍경은 그 증거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pg.372)
Q18. 우리는 운동팀이잖아. 또 20년 우리 팀의 문제정의가 ‘운동하는 문화를 만들자'였던 것 같은데, 너희들은 운동을 왜 해? 어떻게 하면 운동이 재밌을까? 어떤 운동이 재밌는 운동일까? 그리고 그런 재밌는 활동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동참시킬 수 있을까?
짱소
나는 운동팀이다 보니까 지금 있는 문제들?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대응을 많이 해왔던 것 같은데 나는 이런 문제해결에도 의의가 있겠지만 단순히 문제해결을 넘어서 내 삶에 순간순간들을 계속 생각하면서 살고 싶어서? 생각하면서 산다는 게 추상적이긴 한데, 계속 주체성을 가지고 싶은 거 같아. 문제 하나만 보고 이거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내 삶의 전반에서 이 항상 이야기하는 그 태도를 계속 지니고 가고 싶어.
뱀수
나도 비슷한 거 같아. 처음엔 뭔가 해야 하니까? 했던 거 같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도 해야 하니까 하나? 근데 뭔가 좀 느낌이 다른 거 같아. 그러니까, 해야지… 하는 느낌하고, 해야 돼…! 하는 느낌하고.
짱소
운동하는 과정이 좀 즐겁지 않아? 예대넷에서 하는 모든 운동 활동에 대해서? 해야지…하면서 해야 하는데 하는 건 약간 숙제하듯이 하는 느낌인 것 같고. 해야 해..! 같은 경우는 이 운동의 중요성을 인지하면서 즐거워할 수 있기 때문에 한다는 느낌인 거 같은데. 나는 약간 하면서 재밌는 거 같아. 왜 재밌을까?
뱀수
왜 재밌는 것 같아?
짱소
그러게.. 뱀수는 어때? 활동에서 재미를 느껴?
뱀수
끝났을 때 재미를 느끼지. 보람, 고양, 이런 거. (야옹)
짱소
어떤 운동이 재밌는 운동이지?
뱀수
하체. (농담) 그런데 뭔가 그런 거 있잖아. 어릴 때 부모님이나 다른 어른들이 지금 공부 안 하면 후회한다, 백날 천날 이야기해도 안 듣잖아. 나도 그랬고. 그러다 본인이 필요성을 깨닫고 시작해야 제대로 한단 말이지. 운동도 비슷한 느낌인 거 같아. 해야 한다, 해야 한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끝까지 관심 없는 애들은 없고,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하는 거고. 개인의 동기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
짱소
뱀수의 동기는 뭐야?
뱀수
나는 처음에 별 뜻이 없었어. 근데 내가 애초에 태생적으로 성격이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란 말이야. 처음에 진짜 고민 많이 했거든. 근데 거절을 못 해서 그냥 한 거란 말이야. 그래서 그냥 하다 보니까 또 공부로 비유를 다시 하자면, 공부 안 하는 애들 붙잡고 공부하는 애들이랑 놀게 하다 보면 또 어느 정도 공부를 같이하게 되잖아? 그런 것처럼 어느 정도 물들어버린 거지.
짱소
나는 송수근의 영향이 컸지. 송수근 총장이 들어오고 애들이 학교에서 운동하고 하는 걸 보면서 학생의 정체성은 이런 건데 생각을 하다가 예대넷에 연대하고 뭐하고 하면서 이 단체 뭐지 관심을 가지다가 들어오고 물들어버린 거지. 근데 이거 운동팀에서 자주 하는 얘기긴 하다.